박지원 100일…밖에선 “간첩” 안에선 “혼자 북치고 장구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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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오종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여!”

리베이트 파동 등 안정에 기여
캐스팅보터 역할 당 존재감 높여

새누리당 의원이 술자리에서 외치는 건배사가 아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술자리에서 첫 번째로 하는 건배사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 위원장은 평소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성공한다”는 소신을 밝혀 왔다. 그런 박 위원장은 두 번째 건배사로 “정권 교체를 위하여!”를 외친다.

박 위원장이 6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박 위원장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의 책임을 지고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한 6월 29일부터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겸직해 왔다. 지난 100일 동안 일도 많았다. 박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을 겨냥해 “제가 간첩이라면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지 신고도 못하는 꼴통 보수 졸장부가 있느냐”고 썼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전날 자신을 ‘간첩’에 비유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리베이트 파동으로 흔들리던 당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총선 후 3만여 명이던 당원은 이제 11만 명으로 늘었고, 전국 253개 지역구 중 227곳에 지역위원장을 선임했다.

외부에선 능수능란한 협상가로 주가를 올렸다. 추가경정예산, 김재수 해임건의안 등 여야 대치 상황마다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당의 존재감을 높였다. 하지만 박 위원장의 행보를 ‘갈지(之)자 행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야 3당 합의를 깨고 김재수 해임건의안 제출에 동참하지 않았던 국민의당이 막상 표결에선 찬성표를 몰아준 게 대표적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끼여 애로도 컸다. 38석인 국민의당은 양당과 협상하지 않으면 단독으로 의제를 주도할 수 없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식사 자리에서 “나는 삼면초가(三面楚歌)”라며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한테 두드려 맞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한테 두드려 맞고 정세균 의장한테 두드려 맞았다”며 난감함을 표했다. 새누리당의 국감 참여 거부로 파행된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한탄이었다.

외부에선 주가가 올랐지만 당 내부에서는 반발도 크다.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겸직하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황주홍 의원은 “박 위원장은 ‘나한테 맡겨 달라,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이해해 달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해 오기를 지난 6월에 시작해 벌써 10월인데, 여태까지 이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호남 중진 의원도 “한 시간 의총을 하면 40분 동안 말하고 다른 의원들에게 발언 기회를 안 준다. 이게 박지원 리더십의 문제점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하는데 나마저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라고 받아쳤다. 국민의당은 오는 28일 박 위원장의 후임을 인선한다.

글=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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