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는 나의 침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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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터질듯한 긴강감에 2백여관중들도 숨을 죽였다.
사대에 엎드린 14개국 41명 선수들의 눈은 50m전방 10개 동심원의 표적을 향해 하나같이 불을 머금었다.
땅, 땅, 땅
호흡을 멈추고 한번씩 방아쇠를 당길때 마다 불규칙하게 터지는 단조로운 총성.
동심원의 복판 16·24㎜를 꿰뚫으면 10점, 1바퀴씩 넓어질때마다 1점씩이 줄어드는 과녁.
10발 단위로 선수들의 성적은 채점돼 본부석에서 집계됐다.
「100, 100, 100, 100. 」
40발을 넘어 경기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대 뒤편 임원·심판석에는 조용한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Who is he?』
외국의 코치·감독들이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귀엣말을 나누었다. 12번 사대에 엎드린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선수.
차영철.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과녁을 적중시켜가고 있는 차선수는 국제대회출전이 이번에 처음인 우리팀의 「비밀병기」. 마침내 그 진면목과 실력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60발까지 계속된 차선수의 만점행렬은 컴퓨터 재채점결과 1발이 아깝게도 10점아닌 9점으로 수정돼 공식기록은 아주신 5백99점. 백전노장 윤덕하(32)와 곽정훈(28) 까지 평소실력을 지켜 한국팀은 남자소구경복사단체서 중공을 3점, 일본을 6점차로 제쳤고 1시간45분의 접전은 결국 한·중·일의 역사적인 서열을 재확인했다.
하오에 벌어진 개인전서도 차선수는 발군의 성적으로 2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오5시 시상식.
빛나는 2개의 금빛 메달을목에 걸고 시상대를 내려선 차선수는 그러나 뜻밖에도 담담하게 『사대를 침대처럼 살아왔다』는 한마디로 소감을 대신했다.
과묵하면서 강인한 인상.
『88때 40년 노메달의 사격사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다부진 꿈. 자랑스런 의지의 새한국인, 아니 원 한국인을 다시 보았다. 22일 서울 태능국제사격장.<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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