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재발 소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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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8개의 부실기업이 무더기로 정리되면서 이른바 부실기업 정리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네 차례에 걸쳐 56개 부실사가 산업합리화 대상으로 지정, 타사에 인수되거나 제3자가 인수하는 형식으로 정리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부실 정리가 문제의 완결이 될 것인가, 또 다른 부실의 생성과 정리의 필요성은 완전 제거되었는가에 깊은 의문을 갖게된다. 이 같은 의문은 이번 부실 정리 작업의 시작에서 종결까지의 과정과 절차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정리작업은 너무나 많은 국민 부담을 유발하면서 이루어진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56개의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정부는 4조원이 넘는 부채를 상환유예 해주고 인수기업에는 5천억원을 넘게 신규 대출해 주는가하면 거액의 국세와 지방세를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베풀었다.
그뿐 아니라 일부 기업의 부채는 아예 탕감하는가하면 합리화의 이름아래 골프장이나 관광호텔에까지 거액의 세금면제를 무릅쓰고 있다. 이 같은 거액의 지원과 혜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이미 1조원의 돈을 찍어냈고, 그것으로 모자라 1조원을 더 풀어낼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실감나지 않는 규모의 혜택과 지원이 세계경쟁에 앞서기 위해 안간힘 쓰는 건실기업과 첨단산업·중소기업에 돌아가도 모자랄 판국인데 고작 부실기업의 뒤치다꺼리와 인수에 제공된다니 더욱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새삼 이 지경에까지 이른 과정과 경위를 되씹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방대한 특혜가 일부라도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두가지점이 확연하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이 같은 터무니없는 국민 부담을 만든 부실기업이 앞으로 또 다시 생겨날 소지는 과연 없는가 하는 점이다.
부실기업의 문제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생겨날 수 있지만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것이 기업의 책임과 부담으로 끝나지 않고 은행과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풍토가 문제다. 그 같은 풍토는 금융과 경영이 자율과 책임을 떠맡을 수 없게 만드는 관치금융과 정부 간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기업경영과 금융풍토를 개혁하지 않는 한 부실 파동은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정리작업을 마무리하면서도 부실의 진정한 종결을 위한 아무런 제도보완이나 개선책 또는 책임규명이 없었다. 이 같은 경부의 안이한 자세는 또 다른 부실을 예방하는데 도움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방대한 국민 부담을 정당화하는데도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같은 거액의 지원과 혜택이 과연 이들 부실의 치유와 정상화에 기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의 하나라도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돼 특혜만 누출되고 구제금융을 장기화하는 또 다른 부실 이전이 생겨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점 정부와 금융당국은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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