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안이 풍비박산 이무슨 참변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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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물-물-. "
세브란스병원 651호 병실. 김포공항 폭발물 테러사건으로 중상을 입고 입원중인 옥윤철씨(52. 경기기계공고교사)가 고통을 못이겨 신음한다.
휴일인 14일 하오 LA로 떠나는 7순노모와 동생. 오빠를 배웅하고 김포공항을 나서다 폭탄날벼락에 9남매 가정중 5가정, 18명 가족가운데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옥씨일가-.
오순도순 단란했던 9남매 가정의 행복과 평화는 순간의 참변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 하늘의 시기입니까?, 악마의 장난입니까 "폭발사건 직전 택시를 잡느라 현장에서 벗어나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던 옥씨의 부인 한현수씨(48. 서울상암국교교사)는 충격과 비통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9남매의 맏이인 윤철씨는 외아들 건군(19. 연세대토목과2년)를 잃고 자신은 왼쪽 다리에 박힌 10여개의 파편에 살점이 한움큼 떨어져나가면서 정맥이 끊겼다. 또 폐 가장자리에 길이 1cm가량의 파편이 박혔으며 오른쪽 다리에도 4-5개의 파편이 박혔다.
딸 향양(22. 서울여대미술과3년)은 왼쪽다리의 아킬레스힘줄이 끊어지고 왼쪽 다리 경골이 부러졌으며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허벅지에 각각 파편 1개씩이 박혔다.
또 왼쪽 겨드랑이와 오른쪽 발목 뼈에도 각각 파변 1개씩이 박혔다.
옥씨는 15일 상오 파편제거 수술을 받은 뒤 마취에서 깨어나자 계속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향양은 아버지의 병실 옆방인 535호실에 사촌동생 수미양(17. 동명여고2년)와 나란히 누워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옥씨보다는 다소 양호한 상태.
옥씨의 병실엔 부부의 학교 동료들이 줄을 이어 찾아오고 있으나 옥씨는 물론 향양. 수미양이 모두 건군의 사망소식을 모르고 그의 안부를 묻는 바람에 거짓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뺀다.
병원측은 옥씨의 부상중 특히 왼쪽 종아리의 근육이 떨어져 나가 근육 및 이식수술을 하는데 6개월이상이 걸릴것으로 보고 있다.
옥씨 일가중 막내딸 금숙씨(33)는 남편 김봉덕씨(42. 남서울병원마취과장)와 함께 부부가 숨져 외동딸 연진양(8. 신천국교2년)은 졸지에 고아가 됐다.
연진양은 15일 상오 아버지가 근무하던 남서울병원으로 옮겨져 복부에 박힌 파편 제거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자 "아빠" "엄마"를 애태게 찾아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숨진 4명의 유해는 모두 남서울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김봉덕. 옥금숙씨 부부의 영정 양쪽에 조카 건군과 김현주양(15. 잠신중3년)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있다.
현주양의 어머니인 9남매의 맏딸 진복씨는 남편 김용하씨(43. 회사원), 차녀 현지양(14. 정신여중2년)과 함께 중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 한병실에 누워있다.
남서울 병원 영안실엔 사고 당시 어른으로는 유일하게 무사했던 3남 휘철씨(47)가 혼자서 사후 수습과 조문객을 맞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
휘철씨는 "우리 일가처럼 우애가 깊고 화목한 집안도 드물겁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내며 막내 금숙이가 손목을 놓지 않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이젠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아요"라고 울먹였다.
휘철씨는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당국이 사망자들의 장지문제는 물론 희생에 대한 위로보상의 뜻도 표시하지 않고 있다고 분개했다. "대체 우리가족의 이비극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옥씨의 목멘 항변.
옥씨 일가는 황해도 백선이고향. 어머니 김신애씨(76)는 항일운동을 위해 중국에 망명했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자랐으며 그때 김씨집안은 백범 김구선생과도 교분을 맺어 지금까지도 내왕하는 유서있는 집안. 김씨는 8년전 남편과 사별한 뒤 미국에 사는 딸 초청으로 미국으로 갔다가 막내 세철씨가 미국에 가자 막내아들네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세철씨의 원래 출국예정인은 13일이었으나 아들. 딸들은 "언제 또 오실지 모르는데 며칠 더 묵어가시라"고 어머니를 졸라 하루를 늦춘 것이 마의 14일.
막내 세철씨는 LA도착직후 마중나온 동료들로부터 참변의 소식을 들었으나 7순노모가 이를 알면 또 한번 변고가 나리란 상관에서 노모에겐 비밀로 하도록 부탁하고 집의 전화코드도 뽑아버려 어머니 김씨는 아직도 자녀들의 참변소식을 모른 채 꿈길 같은 고향나들이의 감흥에 젖어있다는 소식이다.
세철씨는 "예정대로 13일 왔더라면 화를 면했을 것인데 하고 생각하면 한이 맺힌다."며 "내년에 형제들이 미국에서 모여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세철씨는 17일 다시 일시귀국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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