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사랑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늦장가 덕분에 우리 집엔 이제 국민학교 3학년인 맏이 윤하와 2학년인 막내 윤지가 있다.
집집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는 아들보다 딸애들이 더 귀엽고 잔재미가 있다고들 한다. 아마 사내애들보다 여자 애들이 애교가 더 있고 특히 여자 애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며칠전에 우리식구는 영동에 있는 어느 백화점에 들른적이 있었다. 1층을 지나 2층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데 나와 집사람과 사이에 손을 잡고 끼여 섰던 막내가 뒤로 물러서면서 아내와 내 손을 끌어다 쥐어준다. 엄마와 아빠가 손을 꼭 잡고 가라는 것이다.
둘이 손을 잡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지만 순간 겸연쩍어『윤지야, 왜 손을 별안간 잡으라고 하니?』 하그 물으니『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사
이니까 그렇지!』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나와 아내는 둘이 얼굴을 쳐다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윤지야, 엄마 아빠는 이제 늙어서 손잡고 이런데 다니는 것이 안 어울려』 했더니 『아빠! 아빠는 늙어지면 사랑이 없어져?』 하고 금방 불만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러면서 『저것봐, 저 언니와 오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손을 꼭 잡고 가지 않어!』한다. 딸애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20대의 한쌍이 손을 꼭 잡고 앞에 가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서 사랑의 표시를 나타내고 다닌다는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좋아 보이는데 중년만 돼도 사실 쑥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40이면 어떻고, 50이면 어떤가.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의 이목을 꺼리게 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며 사는게 아닐까. 누가 무어라 하지도 않는데 죄지은 사람인양 움츠리고, 감추고, 속이고 한다. 서로 있는 그대로 마음을 열고 사는 것이 바로「밝고 명랑한 아름다운 사회」라 생각하니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아내의 손을 잡았던 내 모습이 그렇게 우습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