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통합의 정치'가 절실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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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말 가운데는 너무 많이 써서 식상함을 주는 것들이 있다. 위기라는 말도 그 하나다. 우리 사회가 지금 위기라고 말하면 어떤 이들은 즉각 반문한다. 언제 위기 아닌 적이 있었나?

사실 그렇다. 한국의 현대사는 위기 담론을 일상화한 역사였다. 전쟁.쿠데타.산업화.민주화.세계화.'환란' 등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른 변화 속에서 위기 담론은 국민을 긴장시켜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는 효율적 수단이었다.

가까이는 IMF 위기 때 세계가 놀란 '금 모으기 운동'을 생각해보라. 온 국민이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로 충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위기라는 말은 많은데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사실 모든 위기는 세 유형의 행동양식을 불러온다. '극복 투지형' '자포자기형' '밥그릇 챙기기형'. 현대사에서 한국인의 위기 대응은 대체로 '영차영차' 힘을 모아 헤쳐나간다는 '극복 투지형'이었다.

자포자기형은 올해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비극에서 발견된다. '밥그릇 챙기기형'은 전체를 생각하기보다 우선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먼저 챙겨놓고 보자는 식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반응 양식은 '극복 투지형'보다 '자포자기형'이나 '밥그릇 챙기기형'에 가깝다. 빈곤층은 자포자기로 빠져드는 반면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밥그릇 챙기기'에 나선다.

개별 집단이나 개인이 전체의 이익에 대한 고려가 없을 때 사회는 급속히 '죄수들의 게임'으로 빠져든다. "고기가 구워지기도 전에 기다리면 손해라는 생각에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어 모두가 익지 않은 고기를 먹고 배탈이 나는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어쩌면 IMF 위기보다 더 까다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환란은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뚜렷했고, 탈출 방법도 명확했다. 국민이 힘을 모으도록 정부나 사회 각층의 지도력도 발휘됐다. 지금은 아니다.

체감 상황이 환란 때보다 더 나쁘다는 아우성은 많지만, 안중근 선생의 말대로 국가의 위기를 천명으로 생각하고 '이익'을 보면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다. 지나가는 경기 불황이라는 안일한 생각도 팽배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른바 '1만달러의 덫'이라는 가설이 유효하다면 한국이 한 단계 도약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낡은 시스템과 패러다임을 혁신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위기의 본질이다.'1987년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 엔진의 불투명성과 투자 위축은 선진국 문턱에서의 '장기 복합 불황' 우려를 낳고 있다. 중산층 아랫부분이 허물어지고 절대적 빈곤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20%에 육박하는 양극화 경향을 제어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돼 가족복지 체제가 위협받고 있는 반면 고령화 시대를 맞아 단수 아닌 복수의 인생을 살기 위한 사회적 준비는 턱도 없다. 1차 방정식이 아니라 고차 함수 풀이를 요구하는 '복합성의 딜레마'가 오늘의 위기를 힘겹게 한다.

하지만 T S 엘리엇이 말했듯이 전환기에는 반드시 복도와 출구가 있게 마련이다. 광명의 출구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위기를 공유하고, 탈출과 혁신의 전략을 국민이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포자기'와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 극복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가 침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승선한 사람들이 우왕좌왕 자기 살길을 찾느냐, 아니면 힘을 합쳐 격랑에 맞서느냐에 따라 생과 사는 갈라진다.

위기 극복은 기업하는 사람이 기업할 의욕이 나게 하고, 일하는 사람이 일할 의욕이 나게 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할 의욕이 나게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국민의 긍정적 에너지와 자신감을 모아내는 일, 이것이 '통합의 정치'다. 대통령부터 짜증내는 모습을 거두고 정치권부터 '밥그릇 챙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기를 엄격히 진단하고 국민에게 칸트처럼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내야 하기 때문에"라고.

朴亨埈 (동아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