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협·신협 등 신용불량 60만명 개인 워크아웃도 못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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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도 광주에서 가축사료를 만드는 일을 하는 朴모(49.여)씨는 최근 개인 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하러 서울 명동에 있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아갔다가 낭패를 봤다. 지역농협에서 빌린 돈이 많아 워크아웃 신청자격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역 일선 농협 등 일부 금융회사들은 신용회복지원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회사에서 빌린 돈이 전체 채무의 20%를 넘으면 워크아웃 신청자격이 없다는 조항에 걸린 것이다.

朴씨는 지난해 사업을 확장하느라 지역농협에서 2천만원을 빌리는 등 모두 8천만원의 빚을 졌다. 지난해까지는 사업이 그런대로 잘 됐으나 올들어 축산 경기가 심각한 불황을 타면서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朴씨는 "신용불량자는 똑같이 어려운 사람들인데 단지 지역농협에서 빌린 돈이 많다는 이유로 워크아웃이 안된다는 것은 억울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역농수협.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과 일부 상호저축은행들이 지난해 10월 개인 워크아웃 제도가 시행된지 10개월 정도가 지나도록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늑장을 부리고 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협약 미가입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해 개인 워크아웃의 사각지대에 놓인 신용불량자는 6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5월 말 현재 지역 농수협에서 등록한 신용불량자는 40만5천명에 달했으며 신협과 새마을금고에서 등록한 인원도 각각 13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하려면 미가입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갚아 전체 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 밑으로 낮춰야 한다. 따라서 미가입 금융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연체금을 회수하는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반면 상당수 신용불량자들은 이 돈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 신청을 포기하고 있다.

위원회의 김승덕 팀장은 "모든 금융회사가 신용회복지원 협약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지역조합은 중앙회와 별개로 움직이기 때문에 중앙회에서 지역조합에 협약 가입을 강요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회사들이 부실채권을 전문 처리 회사에 잇따라 매각하는 것도 개인 워크아웃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 처리 회사들은 대부분 신용회복지원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에 갚아야 할 돈이 전체 채무의 20%를 넘는 사람도 워크아웃 신청을 하지 못한다.

金팀장은 "부실채권 전문 처리 회사들에 대해서도 협약 가입을 유도하겠지만 일반 금융회사와 달리 채무 만기연장 등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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