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작품전을 보고|빈틈없는 색면회화의 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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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강렬한 원색이 화면을 한치의 빈틈도 없이 메우고 있다. 그러나 그 색면은 단순한 모노크롬(단색) 의 표면이 아니라 고도로 조직화된 평면이다. 그리고 그 화면 한가운데를 십자형의 띠가 수직.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고 또 화폭의 둘레역시 네모난 액자를 따라 십자형과 비슷한 띠로 테두리 지어져 있다. 그리하여 화면은 네개의 같은 네모꼴로 엄격히 구획지어지고 있다. 때로 그 구획의 띠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가느다란 수직의 선조에 의해 화면 전체가 균등하게 잘게 구획지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와같은 구획과 빈틈없는 화면조직의 단위가 바로 사람의 엄지손가락 바닥만한 크기의 둥그스름한 색점이며, 그 색점의 반복된 규칙적 병치가 밀도 높은 모노크롬 회화를 낳게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그 무수한 색점은 그러나 단순한 규칙적인 병치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자그마한 색점들은 각기 한 단위로서의 미세한 소우주를 지니고 있거니, 그것들이 마치 번식하듯이 정연한 질서에 따라 화면을 메우며 일종의 망상조직과 같은 텍스처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금 가회동한국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30일까지) 김기창의 회화는 말하자면 그 망상조직과 바탕이 하나가 됨으로써 이뤄지고 있는 「색면회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는 색점과 바탕이라는 2중 구조가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고 있으며 「겉」으로서의 평면 조직이 「속」으로서의 바탕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겉과 속이, 색점과 바탕이 하나가 되고 있는 그림이다.
김기창의 작업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고도의 집중력과 치밀한 계획을 요하는 작업이다. 또 그만큼 그러한 작업에 수반되는 위험도도 클 것이라 생각된다.
치밀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이른바 「자동적 기계화」의 위험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주어진 「틀」에서 항상 벗어나려는 정신적 긴장일 것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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