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의 질과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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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복이후 여섯 차례나 전전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21일 중앙청으로 이전, 개관함으로써 우리 민족문화의 보고로 새 장을 열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감회를 안겨 주다.
우선 연건평 1만8천 평에 약 3천 평의 전시공간을 확보, 7천5백 점의 유물을 진열한 것은 우리의 박물관 사업이 이제는 세계의 유수한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건물이 역사의 한을 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새로운 세대들에게 새 역사의 지평을 보게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일로 여겨진다. 더구나 이번 박물관 이전의 방대한 업무가 광복이후에 교육받은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새 박물관은 23개 전시실의 배치와 함께 그 진열방법에서도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관람자의 동선을 고려한 진열, 전시실 사이의 공간에 각 전시물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비디오시설, 평이하면서도 자세한 유물 설명 등은 모두 선진국 수준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러한 배려는 역사유물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박물관과 시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지름길 구실을 한다.
박물관은 유물을 연구·보관·전시하는 것만으로 그 사명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유물 하나 하나의 가치와 의미를 오늘에 되살리고 숨쉬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행히 박물관 측은 이번 확장 이전을 계기로 박물관의 사회 교육장 역할 활성화에도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건평 2천 평의 교육전용 건물을 확보, 시청각 교재를 구비하여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시설과 기획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는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박물관 운용의 추세는 전시공간의 확충 못지 않게 그 문화유산을 어떻게 시민의 생활 속에서 숨쉬게 하느냐 하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전문요원의 양성은 짧은 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루브르 미술관 안에 이들을 양성하는 학교가 별도로 있다. 영국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기왕에 박물관에 몸담았던 비문인력들이 대학 등으로 역류하는 현상을 보여 왔다.
정책보국에서도 이 점을 깊이 통찰, 기존요원의 처우개선과 함께 사람 기르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박물관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과천에서 새로 문을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또 새 단장으로 선보일 창경궁 등 모든 문화 공간에 해당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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