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정리와 새로운 특혜|김중웅<KDI 선임연구위원·경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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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제 부실기업이 본격적으로 정리될 모양이다. 부실기업이 생기게된 원인이나 책임문제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결국 국민전체의 부담이 되는 부실기업문제는 그 해결이 빠를수록 좋은 것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 조세감면규제법과 공업발전법도 제정되어 이제는 실행의 결단과 추진만이 남았다. 물론 사회적 공평성이나 책임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저질러놓은 일을 최소의 희생으로 발리 결말을 짓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부실화된 기업의 많은 수가 70년대에는 전략산업으로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성장산업으로 각광을 받았던 업종이다. 이론적으로 산업정책은 시장가격기구를 통한 자원배분의 실패, 즉 시장실패에 대처하려는 정책개입이고 이러한 정부개입이 금융지원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책금융이다. 이러한 시장실패가 발생하여 정부가 개입하게되는 경우는 독과점기업이 존재하여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되더라도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거나, 도로나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과 같이 관련된 재화나 용역이 공공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의 직접 개입을 필요로 한다거나 또는 공해산업처럼 외부 비 경제효과가 있는 산업을 억제하기 위하여 정부가 간여하게 되는 때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정부개입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실패가 오히려 무 간여의 상태보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해외건설·해운 등 부실기업문제는 대부분 이러한 정부실패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부실기업들은 시장 수요예측이나 기술혁신·경영합리화 등에 의하지 않고 정부의 정책금융지원이라는 손쉬운 수단에 의존하여 기업을 확장함으로써 부채가 과다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과정에서 은행은 단순히 정부의 경제계획을 수행하는 매개체로서만 존재하여 금융기관 고유의 대출심사기능 등 금융자율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 부실기업문제를 더욱 확대되게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부실기업을 정리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데 있다. 그 때문에 비록 중앙은행 특융이나 조감 법·공업발전 법 등 여러 정리수단이 강구되었지만 정부는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부실기업 정리에는 일정한 기준 및 원칙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분과 이유가 제시되어야한다. 그리고 정부의 무리한 개입보다는 가능한 한 기업 자체나 은행에 의하여 결정되도록 유도해야한다. 둘째, 부실기업을 정리한다는 것이 새로운 특혜나 기업집중을 심화시켜 또 다른 부실기업발생의 가능성을 내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부실기업정리문제는 단기적으로 은행의 부실채권보전이라는 관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 까닭은 현재 은행이 짊어지고 있는 부실기업과 관련된 과다한 부실채권의 원인이 대부분은행 자체보다는 정부에 의해 야기되었고 금융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하지 않고는 자원배분의 효율화를 통한 국민전체의 생산성제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앞으로 기술발전이나 경제여건의 변화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산업구조 변천에 대응함에 있어서는 특정산업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지양하고, 장기적인 산업조정차원에서 불황산업을 신흥산업부문으로 이전시킬 수 있도록 산업입법을 통하는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인위적인 불황산업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은행의 부실채권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강구인데 그 핵심은 실질적인 금융의 자율성을 보강하여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대출심사기능을 갖추고 적격판정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만 융자를 해주는 관행이 확립되면 부실기업과 부실채권의 예방이 지금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현 경제발전단계에서 볼 때 이제 산업정책은 필요 없고 시장기구에만 의존하면 효율적인 자원배분과 국제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을까?
「찰머스·존스」는 정부 내지 산업정책의 역할에 대한 미·일의 비교연구에서 미국은 금융·재정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정책을 실시하며 미시적 차원에서는 시장기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독과점 정책만이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거시적인 금융·재정정책과 함께 국제경쟁력 강화와 성장을 목표로 치열한 산업정책을 채택한 나라에 비하여 생산성이 낮다고 지적하고 있다.80년대에 들어 우리의 경제운용기조가 시장경제원리 및 민간주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정부의 경제활동간여가 적을수록 좋다는 기본인식이 있으면서도 정부개입의 한계와 역할에 대한 방향정립이 아직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빈약한 부존자원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여건을 고려할 때 경제이론상 생산요소 부존의 지리적 차이에서 출발하여 국제분업과 교역의 이익을 설명하는 종래의 정태론적 비교 우위론은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제경쟁력의 중요결정요인인 기술개발·경영능력 등 주로 교육이나 연구투자·경제계획이라는 인위적인 정책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산요소를 중시하는 동태론적 비교 우위론이 우리현실에 맞는다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경제는 산업구조조정을 통한 새로운 비교우위를 찾아야하는 전환점에 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태론적 이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비교우위를 창출해 나간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새로운 산업 정책관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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