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책이야기] '避書'와 독서삼매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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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나체로 바위에 걸터앉아 땀이 다 식을 때까지 헤로도투스를 읽곤 했다는 영국 낭만파 시인 셸리의 낭만은 과연 공연음란죄에 해당할까? 공공연하다는 것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지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현실로 지각되었음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또 음란행위는 성욕을 흥분 또는 만족하게 하는 행위로서 사람에게 수치감,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뜻한다.

나체로 책을 읽는 셸리의 자태를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성욕을 만족하게 하는지,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셸리가 책을 읽는 장소나 상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지각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여부도 알기 힘들다. 다만 셸리가 자신의 나신을 누군가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묘한 스릴과 흥분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었을 듯 하다.

이 엉뚱한(?) 궁금증은 다른 궁금한 점들로 이어진다. 나체로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게 셸리 나름의 피서법은 아니었을까? 셸리가 걸터앉았던 바위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속 어딘가에, 책 읽기도 지겨워지면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작은 호숫가에 있었던 건 아닐까? 이쯤 되면 차라리 한 폭의 풍경화다. 숲과 호수와 바위와 시인과 책 한 권.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 '피서의 계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예년처럼 올해도 피서(避書)함으로써 피서(避暑)하려고 합니다만 눈에 띄는 책이 많아 막상 피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중략)…저는 이번 여름도 피서(避書)의 계절, 더운 욕탕에 들어가듯 훌훌 벗어 버리는 계절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책에만 빠져 있다가는 펄펄 살아 움직이는 현실과 멀어지기 쉽다는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문자의 깊은 맛에 길들여진 지식인의 솔직한 그리고 역설적인 고백으로도 들린다. 어리석은 물음이지만, 평소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으면 여름 한철 책을 피하고 싶어졌을까?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게 좋은 피서법이라고들 하지만, 술과 음식을 장만해 산에 올라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옛 선비들의 탁족(濯足)이 더 그리워진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남산과 북악의 계곡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탁족')는 시인 황동규의 말도 있지만, 일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에게 책과 독서는 과연 일상이었는가? 그렇다고 답하기 꺼려진다면 책과 독서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 길이 될 것이다. 셸리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 있는 풍경화 한 폭. 생각만 해도 시원해진다.

표정훈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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