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말맛은 고유의 가락과 태깔이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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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 간곡한 권유를 좇아 현대시조를 체계적으로 읽은 제자 나송군이 앞으로는 고시조에 대한 이해도 두터이 해야겠다며 은근히 내쪽의 낌새를 살피는 눈치였다. 퍽 대견스럽게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작심이 못미더워서 이참에 단단이 못박아 두려는 의도로 다음과 같은 일화 한토막을 들려주었다.
-어느 저명 시인한분이 미국에 갔을때 그곳의 어떤 대학생 중심의 문학서클로부터 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강연을 의뢰받았다. 우리의 시를 열심히 소개했으나 도무지 시큰둥한 반응이더니 우리 시가의 뿌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손쉬운 예로 황진이의 유명한 연시『동지달 기나긴 밤을…』을 소개하자 시들한 장내가 갑자기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더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왜 그랬겠나. 바로 절묘한 메타포(은유)때문이었어. 밤을 마치 가위로 천을 자르듯 갈라내어 멋대로 붙이고 떼고 할수있다는 그 발상에 힘입은 메타포 말이야.』
나송군이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대꾸했다.
『사실 저도 그 시조를 휑하니 잘알고 있읍니다만, 거기까진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채였습니다.
『그것이 영어로 번역되는 곤욕을 치렀으니 우리 고유한 시조로서의 태깔이며 가락과 말맛 따위가 온전할리있었겠나. 그런데도 은유의 강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그 실속』만으로써「원더풀」을 연발케 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일이야. 또한「옛것」과「낡은것」의 차이가 무엇인가도 새삼 깨우쳐 주는 것이네.』
『어렴풋이나마 깨달음이 생긴다.』가령 투나 어조가 예스럽다고해서 반드시 낡은 것이 아니라는….』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이번 주의 경우『남한산성』과『설악산』이 진부한 느낌을 주는 것은 꼭히 옛투때문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직정·기물적인 데에 말미암은 시로서의 그 질감 자체가 얕고 낡아있는 탓이다.
옛투를 떨쳐버리지 못했음에도『여름뻐꾸기』가 철저히 진부하지 않은 까닭,『여름의 노래』와『우기』가 한걸음 진일경해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냉정히 되짚어 볼일이다.

<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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