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선언한 패럴림픽 선수 “아직은 때가 아냐. 매순간 즐겨”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이후 안락사하겠다고 선언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벨기에 휠체어 스트린트 선수 마리케 베르보트(37·여)가 11일(현지시간) “아직 죽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베르보트는 400m 휠체어 경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여전히 안락사를 고려하고 있으나 지금은 매 순간 매일 매일 즐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베르보트는 이튿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락사 서류(euthanasia papers)가 내 손에 있으나 여전히 삶의 순간 순간을 즐기고 있다”며 “죽음의 순간에서 힘들었던 날보다 좋았던 날들이 더 많아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리우 패럴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며 이미 2008년에 안락사 준비 서류에 서명을 한 상태라고 재차 확인했다.

14살때부터 난치성 척추 질환(degenerative muscle disease)을 앓고 있는 베르보트는 패럴림픽 직전 인터뷰에서 “난치성 척추 질환을 앓고 있어 매일 밤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안락사였고 내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앞서 그는 프랑스 르 파리지엥과의 인터뷰에서도 “특히 잠잘 때 통증이 끔찍하다”며 “잠을 10분밖에 못 잔 날도 있다”고 밝혔다.

벨기에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그는 이미 장례식 준비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베르보트는 이날 회견에서 “리우 패럴림픽이 끝나면 운동을 그만두고 삶의 모든 작은 순간들을 즐기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안락사는 염두해 두고 있다”며 “매일 계속되는 이 통증에 현재 시야가 20% 정도로 매우 좁아져 있고 자주 발작 증세가 일어난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이어 베르보트는 안락사에 대한 논란에 “안락사를 ‘자살 행위‘로 치부하지 말아야한다”면서 “안락사는 고통을 덜어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나에게 안락사 서류가 없었다면 너무 힘든 통증 때문에 이미 자살했을 것”이라며 “이 서류가 내 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덜어 준다”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