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센터 선정 르포] 부안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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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24일 전북 부안군 위도를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 부지로 최종 확정하자 부안 군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산업자원부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철회 투쟁을 장기적으로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공무원들마저 신변 위협 때문에 주민 설득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반면 위도 주민들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루빨리 개발이 시작돼 보상받기 원하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다만 환경단체 등의 설득에 일부 주민이 이탈 조짐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당황, 허탈, 긴장, 분노-.

위도가 원전수거물관리센터 부지로 확정 발표된 24일 오후 부안군민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먼." "참여정부라면서 이렇게 주민들의 뜻을 깔아 뭉개도 되는 거여." "한번 크게 붙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이제."

부안읍 상설시장에 장보러 나왔던 김영순(37)씨는 "정부가 기어이 핵폐기장을 지을 모양인데, 우리는 어쩐디야"라며 걱정했다. 농협에 다닌다는 40대 남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데모라도 해야 하고, 방학이 끝난 뒤 등교 거부 투쟁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지난 22일 대규모 집회를 고비로 반대 분위기가 수그러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반대파들의 공갈.협박 등이 두려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 찬성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분위기가 험악해 홍보 활동이 불가능했고 이 때문에 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이 퍼졌었다"며 "입지가 확정된 만큼 각 가정에 우편물을 보내는 방법 등으로 홍보활동을 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핵폐기장 결사 반대'라고 적힌 머리띠와 T셔츠를 착용하거나 '아름다운 부안, 핵 없는 세상'이라고 쓴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부쩍 늘어났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붙은 '매향노(賣鄕奴) 군수 퇴진하라' '군민 동의 없는 죽음의 핵 거래, 무효'등의 벽보도 많아졌다. "위도 주민은 1천4백여명밖에 안되고, 반대하는 부안군민은 수만명이나 되잖소. 위도 사람들이야 돈을 타 먹고 다른 곳으로 떠 버리면 그만 아니오."

이날 오후 2시 부안수협 앞에서 열린 핵폐기장 철회 촉구 집회에 참석한 한 70대 노인은 "우리 손으로 뽑아 준 군수가 저 혼자 결정해 일이 커져 버렸다"고 한숨을 몰아 쉬었다. 7만 군민의 생명이 관계된 중차대한 일을 군수 임의로 결정했으니, 원인 무효라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가구마다 보낸 편지에 대해서도 "'유치 결정을 해준 군민들에게 감사한다'고 썼던데 군수 혼자 그랬을 뿐, 우리는 결정해 준 바 없다"며 흥분했다.

부안읍 모산리에 사는 金모(52)씨는 "영광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울 때 엄청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 지금 영광이 다른 데보다 특별히 잘 삽니까"라고 반문했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개인택시 운전기사 윤의식(44)씨는 "못 먹을 떡에 콩 고물을 발라서 우리보고 먹으란다"고 흥분했다.

군 약사회장인 육진수(53)씨는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기는 하지만 왜 부안이 책임져야 하느냐"며 "외부에서 수용을 강요하고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게 기분 나쁘다"고 밝혔다.

임나래(12.부안 동초등 6년)양은 "내가 커서 낳은 아이가 기형아일 수 있다고 해서 데모하러 나왔다"고 했다. 격포항에서 횟집을 하는 정모(47)씨는 "핵폐기장 근처에서 나는 어패류를 찜찜해서 누가 먹겠느냐. 관광객이 안 와 상권이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무원들마저 유치에 등을 돌린 형편이다. 이동영(48)공무원직장협의회장은 "주민 설득에 나서고 싶어도 신변 위협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주유소에선 타도에서 지원나온 경찰 기동대 차량에 기름을 넣어주지 않고 있다.

부안=이해석 기자

<사진설명 전문>
핵 폐기장 선정 확정 발표가 난 24일 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인사들이 전북 부안읍 수협 앞에서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부안=양광삼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25일자 5면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 선정지 부안 르포'기사와 제목 중 "공무원들마저 신변 위협 때문에 주민 설득을 포기한 상태"라는 내용과 관련, 공무원직장협의회 측이 "신변 위협 때문이 아니라 공직협이 투표를 통해 유치 반대로 입장을 정리함에 따라 주민 설득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왔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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