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섬유협상에 「각개격파」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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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특파원】미국이 지난달 30일 홍콩과 새로운 쌍무 섬유 협정을 가 조인함으로써 한국의 대미섬유협상은 어려운 고비를 맞게 되었다.
미국이 연초부터 한국·대만·홍콩에 대해 대미섬유수출을 앞으로 3년 동안 85년 수준에서 동결하자고 제의해 왔을 때 한국 측 입장은 단호한 「노」였다.
한국 측 입장은 다자간 섬유협정(MFA)이나 한미간 쌍무협정 등 기존의 협정이 아직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보다 훨씬 가혹하고 일방적인 요구를 해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의 해를 맞은 미행정부는 업계와 의회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수단으로 이 요구를 계속해 왔다. 미국은 객관적 정당성이 없는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대만·홍콩에 대해 「이간시켜 정복」하는 전술을 써왔다. 즉 각 상대를 분리해서 협상을 벌이다가 어느 한 쪽과 타결이 되면 그 타결공식을 가지고 나머지 두 나라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볼 때 홍콩과의 타결은 한국이나 대만 쪽에서 볼 때 둑의 한 쪽이 터진 꼴이 되었다. 홍콩과의 타결안은 86년에 85년 수준의 0.5%, 87년에 0.75%, 88년에 1%, 89년에 1.75%, 90년에 2.25%, 91년에 2.5%로 대미섬유수출량을 규제하고, 규제대상에는 라미(필리핀모시), 리넨 및 실크 등 지금까지 규제 받지 않던 품목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켰다.
한국의 수출 실적을 보면 84∼85년 사이 MFA 품목이 3% 감소한데 비해 비MFA 품목이 임%나 증가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홍콩 공식이나 이와 비슷한 수준이 적용된다면 원래 미국이 요구했던 동결이나 다름없는 규제가 된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 임하면서 지난 연말 의회가 통과시킨 더몬드 섬유규제법안을 압력의 지렛대로 이용하고 있다. 역시 85년 수준으로 한국·대만·홍콩 3국으로부터의 섬유 수입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 법안은 의회통과 후 「레이건」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오는 8월6일 의회가 거부권을 번복시키기 위한 표결을 할 계획이다.
미행정부측은 한국 등 세 나라가 자기들의 동결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의회분위기가 고조돼서 이 법안의 번복에 필요한 3분의2 득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설득해 왔다.
당하는 쪽에서 볼 때 미국 내정의 역학을 지렛대로 삼고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는 것은 부당하기 짝이 없지만 행정부 측 지적은 현실성이 있다. 의회가 섬유규제법안에 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번복시킬만한 표동원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사가 지난 5월 「레이건」대통령에 전달된 의회서한에서 나타났다.
섬유수입규제활동의 선봉장인 「더몬드」(상원)와 「젱킨즈」(하원)의원이 주축이 되어 마련한 이 서한은 의회가 대통령의 섬유법안 비토를 번복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앞으로 있을 MFA협상에서 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 서한은 또 다음 MFA에서는 수출국이 국내시장을 확대하는 수준으로만 대미수출을 늘릴 수 있게 규제하고 그 대신 가난한 나라들의 쿼터를 늘려줘야 된다고 주장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서한에 서명한 의원수가 상원 70명, 하원 3백2명으로 양원에서 모두 비토 번복에 필요한 3분의2선을 쉽게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콩과의 타결이 보도되자 「더몬드」상원의원은 『좀더 깎아 내리고 싶지만 그 정도면 옳은 방향이다』라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제 미행정부는 이 달 중순에 있을 한국 및 대만과의 2차 협상에서 홍콩공식 정도여야 의회의 번복 표결을 봉쇄할 수 있다는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한국 협상 팀은 어려운 입장에서 최선의 지혜를 짜내야 할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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