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족 한달 넘도록 회의 두번뿐-정부 헌정연 무엇을 하고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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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헌정제도연구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헌정연이 정부의 개헌발의 준비를 하고 있지나 않은지,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폐지하라는 야당측의 공세가 거셌다.
그러나 막상 헌정연의 활동상을 보면 지난 5월21일 발족 후 한 달이 넘도록 지극히 「한가로운」모습.
50∼1백명으로 구성키로 했던 자문위는 「용처」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아직 구성도 안된 단계.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미 작업이 사실상 끝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반면 헌정연의 실무 뒷받침을 맡고 있는 법제처측은 『헌법연구는 이미 80년에 다 해두었기 때문에 실은 별로 연구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민간위원 37명·공직자 3명 등 40명으로 구성된 헌정연이 지금껏 전체회의를 가진 것은 단 두 차례.
한번은 위원들간의 상견례였고 다음 한번은 분과위 구성 등 회의운영을 위해 열린 것일 뿐 아직까지 헌법방향이나 연구결과를 평가하는 전체회의는 없었다.
또 3개 분과위도 1주일에 1개 분과위가 열리는 방식으로 운영돼 지금껏 연구과제분담 등의 일로만 시간을 보냈다는 결론.
이처럼 헌정연의 공식활동은 지극히 완만하게, 별 하는 일없이 진행되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실제 회의에 있어서도 민간위원들이라 통제가 어렵고 『예정된 각본대로 끌고 가는게 아니냐』는 일부의혹을 의식한 위원들의 오기(?) 때문에 법제처측은 애를 먹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지난번 위원장단 선임 및 운영소위구성 때에는 관례에 따라 소위위원을 사전에 내정, 선임하려다 모 교수출신위원이 이의를 제기해 표결에 부친 촌극도 일어났다.
이에 앞서 임명장을 받은 첫날에도 『신문을 보니 정부·여당의 방향이 다 결정됐다는 게 정말이냐』는 위원들의 호통이 터져 나와 간사장인 이양우 법제처장이 애를 먹었다는 후문.
헌정연의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로서 구체적 토론이 벌어지는게 아니고 위원별 담당과제를 발표하는 정도이며 분과위별 평균 회의시간은 1시간 정도.
다만 세간의 높은 관심에 따라 구성 때부터 인기품목이 됐던 권력구조를 담당하는 제2분과위가 지난 25일 1시간35분간 회의를 열어 아직까지는 최장.
이날 제2분과위에서도 『대통령중심제나 이원집정부제의 표현은 학술상 타당치 않다. 대통령제 또는 대통령주의, 그리고 절충형 정부형태 등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는 등 학리적 논전이 다소 있은 정도라는 것.
또 내각책임제론자인 이 모 교수가 대통령중심제 연구를 맡아 이채를 띠었으나 법제처 관계자는 『각 개인의 주장과 상관없이 과제를 배분한 증거』라고 강조하면서 이것이 대통령중심제론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적 포석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
헌정연의 조타수 역을 하고 있는 이 법제처장이 연구결과를 취합, 매주 고위층에게 보고하는 반면 민복기 위원장은 남북대화사무국에 마련된 사무실에 간간이 얼굴을 비치는 정도다.
이처럼 별로 한 일도 없고 대단한 기밀도 없는 것 같은데도 헌정연의 운영은 엄밀한 보안에 붙여지는게 특징.
회의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것은 물론 회의일정도 「대외비」로 처리되며 위원들에게도 논의내용을 일체 외부에 밝히지 말도록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간사장은 「불필요한 오해」가 나올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오히려 이런 비밀주의 때문에 『말못할 뭐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다.
헌정연의 늦은 진도에 대해 실무관계자는 『사실 연구를 한다지만 핵심인 권력구조 부문에 대해 더 연구할게 뭐 있느냐. 지난 80년의 헌법심의위원회가 작업을 다 해놨는데…』라고 말한다.
즉 정치적 결단과 「모양내기」를 위한 절차 정도가 남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버튼」만 눌러지면 「짜 맞추는」일은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이미 기본모형도가 작성돼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지금껏 나온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언급 등을 종합해보면 헌정연의 결론이 최소한 대통령직선제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국회헌특에서 여야간의 합의가 도출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닌 중재 안의 성격으로 헌정연의 결론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헌정연에 책정된 예산은 1억5천만원.
80년의 헌법심의위 운영비 3억원에 비하면 물가상승 등을 감안 않더라도 매우 적은 액수. 당초 기획원이 3억원을 배정하려고 하자 이 법제처장이 스스로 삭감을 요청, 절반이 됐다는 후문.
그러나 자료발간·보고서 작성 등 실제작업에 들어가자 예산부족으로 곧 쩔쩔매게 됐다는 것인데 위원들에게 회의때마다 지급되는 거마비의 조정론까지 나왔다는 것.
궁색을 자청한 살림 속에서 법제처가 마련해놓은 확실한 것은 40개국의 헌법전을 모은 책자 2권.
다음으로 내놓을 예정인 것이 각국의 헌정 운영환경과 운영실태.
법제처는 이 같은 실무작업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낸다는 방침아래 광화문 근처 호텔에 방을 얻어놓고 작업 중. <김현일·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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