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안전 운행이 화를 부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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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3번기 2국> ●·스 웨 9단 ○·커 제 9단

11보(124~138)=우변 24를 본 스웨가 25로 웅크린다. 우위를 의식한 걸음일까.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물러선다. 분명히 스웨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 한 판을 내주는 순간 타이틀 획득은 실패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한다. 백번으로 33연승을 자랑하는 커제인지라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 백 26에는 흑 27로, 백 28에는 흑 29로 두텁게 두텁게 물러선다. ‘만사불여튼튼’이다.

“이렇게 버티면 커제의 백번 무적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르겠는데요?” 스웨는 정상급 프로기사 중에서도 실수하지 않기로 정평이 난 침착함의 대명사. 아무리 커제의 기세가 좋다고 해도 집이 부족하면 지는 게 바둑이라는 게임의 속성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아무도 동의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바둑 관계자들도 판단이 어려운 모양이다.

좌하귀 쪽 흑 33은 큰 끝내기. 스웨가 조금씩 승리의 고지를 향해 다가서는 느낌이다. 그런데 백 34를 기다려 좌상귀로 달려가 꽉 이은 흑 35, 승부의 변수를 없애겠다고 두텁게 이은 이 수가 뼈아픈 실착이 됐다. 이 수로는 ‘참고도’ 흑1을 선수하고 3으로 지켜두면 안전했다. 백4로 밀고 나올 때 흑5로 물러서면 상변과 우상귀 쪽은 어떤 ‘뒷맛’도 없다. 이랬다면 무난한 스웨의 승리인데 튼튼하게 마무리한다는 수가 화를 불렀으니 이게 승부의 운명일까.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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