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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상승기마다 ?선이 호재|불붙은 증시...과거의 예와 외국의 경우를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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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4·24대폭락」이후 5월 중순까지 잠깐동안의 휴식기간이 있었 을뿐 연일 오르막길을 내닫고 있는 형세다.
주가는 과거의 예나 외국의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정치·경제·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3저 시대인 최근 전 세계의 증시는 모두 활황이다.
특히 국내증시는 3저에다 자본자유화의 지속적 추진, 개헌정국의 분위기 등으로 세계 어느 나라 증시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올 들어서만 주가는 연초대비 50%나 올랐으며 이같은 활황 장세를 반영, 고객예탁금잔고는 2천4백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주가가 바닥을 헤맬 때인 80년의 1백억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9월 5조 5천억 원에서 불과 8개월 만인 지난 5월말 이미 2배 가까운 10조원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증시전문가들은 자본자유화 추진의 호재로 국내증시가 계속 활황을 유지하면서 주가도 한 단계레벨 업 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제발전패턴이 비슷한 일본의 과거 예를 들면 이같은 전망이 더 명확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기대는 증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국안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국내증시는 3차 5개년 계획의 초연도인 72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71년까지만 해도 상장회사는 50개사(현재 3백45개사)에 불과해 증시를 통한 기업자금조달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었다.
이후 증시는 현재까지 크게 나누어 네 차례의 상승국면과 세 차례의 하락침체기를 겪어왔다.
네 차례의 주가상승에는 정제외적으로 모두 총선이 끼어 있으며 고도성장·저금리·해외 건설경기호조 등의 호재가 겹친 반면 하락기에는 석유파동·긴축정책·정국 불안 등의 악재가 끼어있다. 특히 선거전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것은 그때마다 돈이 많이 풀리는데다가 정부의 각종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돼 별다른 악재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차 상승기>
(72. 1∼73. 7)이전까지 단조로운 상승세를 보였던 증시는 72년 1월 17일의 대폭적 금리인하(20. 4%∼16. 8%), 「8·3조치」에 따른 사채동결, 금리 재인하(12%)라는 메가톤급 호재로 72년 1월 4일을 100으로 한 당시의 다우식 종합주가지수는 73년 7월 21일 3백 94. 3까지 급상승했다.
이 기간 중에는 월남특수경기가 절정을 이뤘으며 9대 선거가 끼어있었다. 또 73년 기업공개촉진법의 제정에 따라 상장기업은 1백 4개로 크게 늘었고 우량주식의 공급이 대폭 확대됐으며 14. 1%라는 사상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한 때이기도 하다.

<2차 상승기>
(74. 10∼78. 8)중동경기로 대변되는 이른바 해외건설 부문의 호조로 단군이래 최고의 호황기였으며 4년 가까이 주가오름세가 지속됐던 시기.
건설주가 양세를 주도하며 종합주가지수는 다우식으로 74년 10월의 95. 1에서 78년 8월 2백28. 8까지 뛰어올랐다.
특히 건설주의 상승률은 75년 2백 46. 4%, 76년 1백 30. 1%, 77년 1백 35. 4%, 78년 99%로 지수로는 무려 6배 이상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도 역시 78년의 10대 총선이 끼어있었으며 기업공개가 러시를 이뤄 75∼78년에 걸쳐 3백 56개 사가 상장되었다.
당시 수출드라이브의 추진으로 수출은 해마다 30∼40%씩 신장, 주가상승이 지속됐으며 또 76년초 포정 영일만에서의 유정발견설로 유화·화섬주들이 급등세를 보였다.

<3차 상승기>
(81. 1∼81. 7) 80년의 마이너스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진데다 해외건설수주액이 1백 37억 달러에 이르는데 힘입어 종합주가지수는 시가총액방식으로 1월17일의 93. 14에서 7월 7일 1백 65. 96으로 급등, 주가는 78. 2%나 올랐다. 이해도 4월 11대 총선이 있었다.

<4차 상승기>
(84. 1∼현재) 84년 1월 7일의 종합주가지수 1백 14. 37에서 2백 45를 넘어서는 대상승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구조개편에 따라 전자·자동차업종이 주력업종으로 등장, 장을 주도해 가는 대신 과거주력주였던 건설·조선관련업종이 부실기업으로 정리되는 비운을 겪고있다.
또 81년부터 외국인전용 수익증권발행으로 시작된 자본시장 개방정책이 작년12월 삼성전자의 CB(해외전환사채)발행을 신호탄으로 대우중공업·유공 등이 잇달아 해외시장에서 CB를 발행하는등 2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다.
저유가·저금리·엔고등 「3저」에 따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으며 북예멘 유전개발 및 제3국과의 관계개선 기대로 주가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
한편 이 기간 중에도 85년 12대 총선이 있었으며,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이나 앞으로 외국인에 대해 국내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할 수있는 문호개방에 대한 기대 등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1차 하락기>
(73. 7∼74. 10)국제 원자재가격이 폭등, 주가가 50%이상 폭락한 시기.
특히 1차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주가지수(다우식)는 73년 7월 21일 1백 39. 4포인트에서 74년 10월 17일 95. 1포인트로 떨어졌다.

<2차 하락기>
(78. 8∼80. 21)2차 석유파동 및 고금리·정국불안으로 주가는 41%나 떨어졌다.
80년 1월 12일 금리를 대폭 인상(18. 6%→24. 0%)했으며,79년 10·26사태, 80년 5월 광주 사태등 정국불안으로 경기가 급격히 후퇴했던 시기.
종합주가지수(다우식)는 2백 28. 8포인트에서 1백 35. 0포인트로 하락했다.

<3차 하락기>
(81. 7∼83. 12) 83년 5월 장영자사건·7월 금융실명제 발표, 83년 명성그룹 및 영동개발의 부도와 랭군사건, KAL기 피격 등 잇단 대형사고가 겹쳐 시가총액종합주가지수는 1백 65. 96에서 1백17. 04로 급락, 증시는 급랭됐다.
이 기간 중에는 금리를 12. 6%에서 8. 0%로 내린 82년의 6·28조치같은 대형 호재도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CB등을 발행하고 있는 우리의 현 단계는 일본의 60년대 초와 유사하다. 일본은 소니가 10년 ADR(주식예탁증서)를, 62년에 미쓰비시·히타치가 CB(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이때를 전후해 주가는 50∼2백%가 각각 올랐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전반적인 주가는 57∼61년 일경 다우 평균이 4배가 오르는 급등 뒤의 여과로 떨어졌는데 이는 기업수지가 부진한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악재는 과다한 주식물량공급에 있었다.
따라서 주식물량의. 절대부족현상을 겪고있는 국내증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증자나 기업 공개를 통해 물량을 늘릴 때 이점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일본은 자본자유화가 본격화된 65년 6월부터 73년 6월까지 동경지수(68년 1월4일=100)가 81. 29포인트에서 4백 22. 48포인트로 무려 5배 이상 상승했다.
87년 하반기 이후 외국투자가의 제한적인 주식투자를 허용할 것으로 보이는 우리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때 별다른 악재가 없다면 국내 증시의 고주가시대 개막도 멀지만은 않다는 것이 증권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80년 들어 오일 달러를 중심으로 한 외국자금이 동경증시에 대량 유입되면서 주가는 급상승, 동경지수는 1백 포인트 이상 뛰었는가하면 석유파동과 대형 도산이 있을 때는 동경지수가 1백50포인트정도 급락하는 양상을 띠었다.
한국자본시장개방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은 최근 야촌·산일 증권의 경제연구소팀이 국내증시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는데 매우 밝게 보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우선 한국경제가 3저의 호기를 활용, 균형있는 성장을 할 것으로 보는 한편 본격적인 자본자유화가 시작되는 87년 후반부터는 주가상승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야촌 증권은 한국의 주가수익률(PER)이 8. 1배로 아직도 낮은 편이어서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오는 88년 말에는 종합주가지수가 현재의 2배 수준인 4백8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산일증권은 오는 90년 말까지 종합주가지수가 7백 92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들은 모두 한국의 유망업종으로 전자·자동차·기계관련주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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