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앞 장송곡 시위' 스님들 괴롭힌 60대 입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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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경찰서는 5일 사찰 앞에서 장송곡을 틀고 승려들과 신도들을 괴롭힌 혐의(상해)로 A씨(60)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지난 5월 24일부터 6월 18일까지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입구 앞 도로 한쪽을 점거한 후 확성기 4대를 설치한 차량에서 장송곡을 반복적으로 튼 혐의다.

이 사찰 승려 50여 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울려퍼진 장송곡 탓에 두통과 수면장애, 소화불량 등을 겪었다.

또 사찰 앞 불교용품 판매점과 찻집, 농산품 가게 등 4곳의 상인들과 청소원 등도 피해를 입었다. 화엄사 상주 인원은 모두 100여 명이다.

조사 결과 지난 3월 화엄사의 관리를 받는 순천의 한 사찰 주변에 불법으로 어머니의 묘를 조성한 A씨는 해당 사찰 측에서 순천시에 민원을 제기하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

A씨는 집회 신고를 한 뒤 한동안 해당 사찰 주변에서 "민원을 철회하라"고 요구해오다가 화엄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철거민 단체 회장이기도 한 A씨는 화엄사 앞에서 주로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장송곡을 틀었다. 도로 한쪽 바닥에는 돗자리를 깔고 노숙용 천막을 설취한 뒤 술을 마시거나 노숙·취사 등의 행위를 했다. 자신들이 잠을 자는 대낮에는 장송곡을 껐다.

A씨 등은 화엄사 측에 순천 사찰의 주지와 사무장에 대한 제명, 자신에 대한 민원 철회, 집회 과정에 들어간 비용 및 어머니 장례비 등을 요구했다.

A씨와 함께 장송곡 집회를 연 이들은 A씨의 형, 이번 민원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노숙인 2명이다. A씨는 노숙인들에게 대가를 약속한 뒤 집회에 참여하게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억대의 돈 요구와 함께 장송곡에 시달려온 화엄사 스님 57명은 A씨 등을 고소했다. 신도회 소속 500여 명도 진정서를 냈다.

경찰은 과거에도 과도하게 집회를 열어 부당한 요구를 한 전력이 있는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낮다"며 기각했다.

구례=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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