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교양 -오락 구분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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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상산업진흥원 뉴스워치팀(책임연구원 송종길)이 내놓은 '지상파TV 3사 봄 프로그램 개편 편성 분석'에서 오락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이 가장 높은 채널로 지목된 KBS2는 "방송사가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흥원은 오락프로라고 구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반발했다(이를테면 어린이 프로인 '매직키드 마수리'나 주로 연예인을 초대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행복채널', 그리고 동물과 연예인이 다수 등장하는 '주주클럽' 등은 방송사와 진흥원의 분류가 다르다).

이런 분석과 반응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같은 프로를 두고 한쪽은 오락이라고 지적하고 다른 한쪽은 교양이라고 우기는 일이 때마다 반복된다.

왜 그럴까. 위 연구의 목적에도 나와있지만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사의 경우 보도.교양.오락 프로그램이 장르별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법(방송법)이다. 균형과 조화는 고전주의적 세계관의 미덕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야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옥탑방 고양이건) 자신을 만족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때를 아십니까'(MBC)라는 '교양'프로가 있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기획의도였다. 옛날 일을 말(내레이션)로만 하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많은 부분을 재연했다.

컬러를 흑백화면으로, 심지어 '비 내리는' 화면으로 특수효과를 넣어 진짜 그 당시 자료화면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비슷한 의도로 제작되는 프로가 바로 '타임 머신'(MBC)이다. 과연 이 프로는 교양 프로일까, 오락프로일까.

다수의 연예인이 나와 수선 떠는 걸로 보면 오락이지만 기획의도만 보면 대단히 건강한 교양프로그램이다. 제작도 시사교양국에서 한다. 이걸 굳이 '교양이냐, 오락이냐'로 갈라서 비율을 맞출 필요가 있을까.

교양성과 오락성을 나누는 일이 고단하거나 무의미한 쪽으로 시대는 굴러가고 있다. 뉴욕과학아카데미(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에서 2000년 여름에 발간한 보고서에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었다. 인간의 성을 2개가 아니라 5개(The five sexes)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섯은 완전한 남자와 여자, 중간자, 그리고 4분의 3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진 자 들이다. 지금의 방송 역시 교양과 오락을 성별 나누듯 양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전 학창시절 오락시간은 수업시간과 대비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TV교양은 수업시간의 연장이어야 하는가? '강호동의 천생연분'(MBC)은 누가 보아도 오락적이지만 그 프로를 통해서도 남녀의 심리에 대한 꽤 실증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일종의 교양프로라고 주장한다면 무엇이라고 반박하겠는가. 한편 연예인이 중심인물이라고 반드시 오락프로도 아니다. 지난주 약속이나 한 듯 가수 보아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SBS)'나 'MBC 심야스페셜'은 부동의 교양프로다.

상당 부분 보아의 노래와 춤과 토크가 있었지만 그걸 오락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소재가 아니라 접근방식이 교양과 오락을 가르는 것이다.

사전은 오락에 대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위안을 베푸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교양은 '문화에 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이다.

교양프로를 보며 즐겁고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막상 즐겁기는커녕 짜증만 부채질하는 프로를 오락프로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분류항을 바꾸거나 분류의 기준을 함께 토론해 볼 때가 되었다. 오락과 교양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일 자체가 오류가 아닐까.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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