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공방 막후서 여-야 절충 활발|막 내린 국회 본회의…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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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가 엿새간의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17일부터 상임위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여-야간 헌특 구성을 둘러싼 본격적인 절충도 벌어지겠지요.
-이번 국회 대정부질문은 부분적인 해프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례 없는 순항이었습니다. 야당의원의 질문이나 국무위원의 답변을 문제 삼은 정회사태가 한번도 없었고 의석에서의 야유도 적었습니다.
-연내 합의개헌이라는 대 원칙에 의견의 일치를 본 터라 그런지 12대 국회의 관행처럼 굳어졌던 여야간의 신경전이 별반 없었죠. 오히려 3당 대표연설과 대정부질문의 내용을 보면 정치민주화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사회분야의 민주화가 시급하다는 시각에 있어서도 여야가 일치하고 있었어요.
-다만 야당은 구속자 급증·분신자살·소외계층의 문제점 등을 들어 이런 현상은 정부·여당의 독선에 근원적 책임이 있었다는「원인지적」과 책임추궁에, 여당은 민주화의 실현을 위한 정책 노력과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는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야 측은 호헌에서 개헌으로 돌아선 이유, 정치범의 양산과 그 과정, 다시 말해 자신들이 「비 민주」라고 규정하는「과거」에 질문의 상당부분을 할애, 대여공격을 퍼부으며 이제 민주화 의지가 확실하다면 구속자의 전면 석방으로 그것을 보이라는 논리를 폈죠.
-정부측의 답변은 대타협의 분위기는 존중하되 실정법 위반자를 간단히 정치적으로 해결하면 법질서가 문란케 되고 그로 인해 법의 권위가 실추된다면 그것은 전체국민의 손해가 되고 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측은 정치타협이 됐다 할지라도 구속자의 석방을 위해 밟아야 할 사법적 절차나 실무적 기준이 있는데 야당이 이를 너무 도외시한다는 반응이라 볼 수 있지요.
-대정부질문을 통해 구속자 석방문제가 사실상 헌특의 전제조건으로 부각됐습니다. 개헌과 그를 위한 헌특이 중심 이슈임에도 여야 모두 개헌내용에 대해서는 논리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습니다.
-야당은 개헌논의의 각 론을 전개한다고 했습니다만 대통령의 선출방법이 직선제가 돼야 한다는 점만을 되풀이 강조했을 뿐 핵심인 대통령 중심제의 당위성에 관한 논리전개는 약했습니다. 여당도 권력분산·국회활성화 등 몇 가지 원론만 제시했을 뿐 대안을 내놓지 않아 개헌방향을 둘러싼 여야공방은 사실상 초점을 잃은 듯한 인상이에요.
-이번 국회가 헌특 구성에 초점이 있었던 만큼 헌특 구성의 조건인 구속자 석방문제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정당의 조기상 의원 이직 설에 의한 대통령 중심제의 폐단을 지적하고 신민당에 묻는 방식으로 내각책임제를 적극 옹호한 것이 눈길을 끌었어요.
-조 의원 발언은 한때 당내 파문을 야기해 「사견」임이 강조됐지만 결국 그의 발언이 민정당이 생각하는 개헌방향의 한 가닥을 표면화시킨 것이라는 점과 이 발언을 계기로 여권 내 의견조정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죠.
-본격적인 개헌 논의보다 야당 측은 △정부·여당에 진정한 개헌의지가 있는지 △합의 개헌이 안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데 질문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의 답변은 정부의 헌정제도 연구 위가 대통령의 자문기관일 뿐 정부측의 개헌발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뚜렷이 했습니다.
-그밖에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지역·계층간의 부의 편재·위화감 등이 강조됐으며 지방경제의 활성화 문제 등 이 거론됐고 야당 측은 전례 없이「고문」문제에 많은 질문을 할애했습니다.
-고문사실이 밝혀져 국가적 망신을 살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정부가 아니며 고문사실이 밝혀지면 엄단하겠다는 답변은 총리로서는 딱 부러지는 대답이었습니다.
-결국 이번 대정부질문은 여야가 헌특 협상과 개헌협상을 염두에 두고 고지를 확보하려는 전초전의 성격입니다.
-어쨌든 양 자체가 헌특 구성을 위한 것이라 순항했던 셈입니다. 그러나 신민당의 김동주 의원의 경우 불필요한 자극적 용어와 저질표현으로 여당은 물론 야당의원들도 눈살을 찌푸렸죠.
-「자결용의가 있느냐」는 따위로 나왔으니 의원의 자질이 의심되는 한심한 일입니다. 그와는 달리 조순형 의원의 논리적인 추궁은 이번 국회에서 수작이었다는 평입니다.
-헌특 구성 문제는 구속자 석방문제에 걸러 뒤뚱거리고 있는데 곡절을 좀 겪더라도 결국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론이죠.
-그러나 신민당의 동교동 측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데도 당내 역할 상 어쩔 수 없는 입장이지만 상도동 측과 이민우 총재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표면상 진전의 기미는 약합니다.
-민정당 측도 구속자 석방은 헌특이 구성된 후 화합의 차원에서 개별적·단계적으로 처리하며 문익환 목사 건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후 협상과정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평행선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양상이고 실제로는 상당히 의견이 접근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17일 총무회담에 이어 주말께 대표회담을 하자고 여야가 의견접근을 보여 협상레일은 깔려 있어요.
-지난 14일 본회의에서 법무장관이 구속자 총수 및 분류현황을 답변한 것도『그동안 분류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정부가 언급한 점에 비추어 하나의 진일보라고 볼 수 있겠죠.
-신민당의 상도동계가 뒤늦게 강경 입장을 취한 것도 뒤집어 보면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라고 볼 수 있죠.
-김대중씨도 사실상 헌특 구성까지는 응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번에 헌특이 구성 안되면 여야 모두 국민들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기본인식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얘기는 구속자 석방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헌특 구성이 안될 때에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국민에게 해명을 할 수 없다는 뜻이겠죠.
-이세기 총무가 총무접촉에서『1천명의 구속 자는 우리도 부담이다. 여러 계기를 잡아 단계적으로 풀겠으니 일이 되도록 하자. 바스티유 감옥 열리듯 할 수는 없으니 전제조건을 달지 말라』고 했다는 거고 김동영 총무도 이해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는 거죠.
-문익환 목사 건도 당장은 안되지만 분위기가 풀리면 어떤 형태로든 해결의 방법이 없지 않다는 관측입니다.
-신민당도 요즘 헌특과 문 목사를 바로 연결시키지는 않고 있어요.
-여야간에는 거의 매일 총무접촉이 있고, 얼마 전에는 총리와 민정·신민당 총무의 골프모임도 있었다는 거예요. 막후에서는 얘기가 잘 풀린다는 거죠.
-민정당도 확고한 개헌의지를 밝혔고, 신민당도 연내개헌이 목표라고 주장해 왔던 만큼 헌특 구성은 대세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겉으로의 강경 입장과 대치는 나중에 나올 결과를 돋보이게 하려는「심모원려」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정리=안희창·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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