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평균 수명은 2년|한은 36년…총재 16명 거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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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은이 12일로 창립 36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한은총재를 지낸 사람은 초대 구용서씨로 부터 현 박성상 총재까지 모두 16명.
평균 2년 남짓한 기간을 재임했고 임기인 4년을 제대로 채운 사람은 김유택(2대), 김세련(9대), 김성환(11대)씨 등 3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통화가치의 안정」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과의 갈등과 대립이 가장 주요한 이유.
물론 정부와 밀월 관계를 누린 시기도 있었지만 62년의 한은 법 개정이후 정부와 한 은의 밀월관계는 대부분 한 은이 정부의 정책에「순응」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게 일반적 평가.
재무부와 한은은 56년 한은법개정을 둘러싸고 당시 인태직 장관과 김유택 총재가 맨 처음 첨예하게 맞섰다.
인 장관이 은행감독부(현 은행감독원)를 재무부로 옮기는 등의 한은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김 총재가 즉각 기자회견을 통해『재무장관이 한은법개정 운운한 것은 연구부족이거나 경솔한 행동』이라고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선 것.
이 문제로 김 총재는 결국 한은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6대 유창순 총재는 증권파동으로 자리를 물러났다. 당시 증권파동의 여파로 수도결제 불능 사태가 일어나자 정부가 한 은에 대해 자금공급을 지시했다. 처음 당시 화폐로 2백80억 환을 지원한데 이어 정부가 다시 3백억 환을 추가지원 하라고 지시하자 유 총재는『비정상적인 투기과열로 빚어진 수도결제부족을 중앙은행이 공급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유 총재는 이 무렵 추진되던 한은 법개정에도 반대, 결국 물러나게 된다.
7대 민병도 총재도 재무부와 맞서다 사표를 내고 물러난 케이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첫해에 총재로 부임한 민씨는 외환사정 악화에 대해 정부측에 계속 경고를 해 오다 어선구입을 위한 이-불 차관도입에 한 은이 지급보증을 해 달라는 정부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한은법개정으로 재무부가 사실상 감독관청으로 올라앉게 되면서 한은의 빛이 바래기 시작한다.
한은 총재 중 유일하게 2기를 연임, 최강수 총재로 기록되는 11대 김성환 총재는 당시 남덕우 재무와 김용환 재무장관을 거치면서 밀월과 긴장관계를 함께 경험한 케이스.
은행감독원장으로 있던 김씨를 총재로 발탁한 남 재무장관이 사이가 좋았으나 남 재무 장관이 부총리로 옮겨가고 김용환 재무장관이 취임, 재무부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사이가 서먹해진다.
결국 은행감독원을 한은에서 독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한은법개정안이 마련되자 김 총재는 안에서 밀려 반대하고 나섰으나 대체로 순응 족을 택해 장도 할 수 있었다.
조사부장을 세 번씩이나 지낸 12대 신병현 총재는 한마디로「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꼽혔다. 정부에 대한 정책건의는 본인이 스스로 집필했고 총재실에서 일의 구상을 하고 있을 때는 총애하던 조사담당이사가 들어와도『불쑥 들어오면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면박을 주는 정도.
13대 김준성 총재는 비 한은 맨으로 처음 총재가 됐다. 실무형·현장확인 스타일로 정부에 대해서는 금융정책 외에도 경기나 물가대책 등에 관해서「귀찮을 정도로 일을 벌이고 건의하는 돌진형」으로 꼽혔다.
14대 하영기 총재는 정통 한은 맨으로 항상 중앙은행고유의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고 자질구레한 데는 신경 쓰지 않는 보스형 기질로 기대를 모았으나 예기치 않던 대형 금융사고가 잇달아 터지고 강경식 재무장관과의 매우 불편한 관계 때문에 단명으로 끝났다.
15대 최창락 총재는 깐깐한 정통 관료출신의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
중앙은행의 독립성 유지에 적잖은 관심을 가져 지난해 한은 창립 5주년기념식에서는『60년 이후 경제개발과정에서 금융에 대한 정부간섭이 커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성이 제약을 받고 있다』면서『한 은의 자주성과 기능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선언, 재무부에서는『한 은이 드디어 독립선언을 한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듣기도.
재무부와의 관계에서도 평소의 소신을 지켜 가면서「통화가치의 안정」이란 목표를 대체로 무난히 유지했다는 평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퇴임사에서『통화공급을 균일하게 유지하지 못한데 아쉬움을 느낀다』고 밝혀 정부와의 관계가 쉽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현 박성상 총재는 부임 초부터 젊은 직원 뺨치는 정력을 과시하면서「부지런한 총재」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
역대 총재들이 한 은의 독립성 추구를 어떤 방법으로라도 표시했던 것과는 달리 취임 일 성에서「정부와의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고 요즘도 정부의 요구사항은 한발 앞질러 밀어 줄 정도라는 평이다.
정인용 재무장관이 은행감독원장에서 올라간 케이스여서 한 은에 상당한 재량권을 주고 있는 데다 평소 소신이 정부정책과 전혀 어긋나지 않아 중소기업 육성, 부품·소재의 국산 대체 등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괜찮다 할 수 있는데 이는「순응」이라기보다는「적극적 협조」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과거의 밀월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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