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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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더할 나위 없는 기대와 축복속에 태어나는 아기. 그 아기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서 「바깥 세상살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아기를 위한 값진 배려가 아닐까 싶다.
과연 한국의 아기들은 소중한 생명으로서의 권리를 최대로 누리며 이세상과 만나고 있을까?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나는 여간 유감스러운 게 아니다. 그야 물론 부모 탓이랄 수만은 없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 부모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환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까닭에 아기가「최선의 대접」을 받으며 태어나지 못하는 예가 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기와 산모 모두에게 제일 바람직한 자연 분만을 위해 좀더 노력하지 않고 쉽사리 약물과 기계를 이용하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게 바로 그런 경우다. 엄마의 품에 안겨「최상의 음식」인 엄마 젖을 빨지 못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기는 아기대로 각기 다른 방에서 서로를 기다려야 하는 병원 생활도 마찬가지다. 또 일단 제왕절개 수술로 분만한 경험이 있는 산모라면 다음에도 자연 분만은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해 버려 무조건 수술을 받게 하는 것도 아기에 대해 터무니없는 푸대접이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웬만하면 햇빛을 많이 쬐게 하는 정도로도 너끈히 치료할 수 있는 유아 황달에도 그 여린 갓난아기의 이마에 주사 바늘을 꽂거나 아기의 눈을 가린 채 소의 「황달통」에다 집어넣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이미 밝혀진 포경 수술도 무조건 해 두는 게 좋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병원 역시 꽤 흔한 모양이다. 그밖에도 소중한 아기에 대해 온당치 못한 대접들은 일일이 손꼽기 어렵다.
환자에게 자신이 받게 될 의료적 처치의 내용과 이유, 그 대신 할 수 있는 처치방법 따위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란 간데 없고 병원측의 일방적 지시 같은 설명대로 따라야 할 의무만 남은 듯한 형편이다.
이 모든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환자의 권리를 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하는 제도나 병원 뿐 아니라 그것을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아기의 부모들도 함께 그것을 나눠 맡아야 한다.「의료 서비스에 대한 현명한 소비자」로서 일부 선진국의 시민들처럼 환자의 권리가 최대로 보강되는 의료 기관을 골라 다니는 노력, 그리고『나도 분만실에 들어가서 진통하는 아내의 호홉 조절을 돕겠다』거나『아기와 같은 방을 쓰면서 모유를 먹이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면「환자의 권리」란 공염불이기 십상이다. 그래가지고는 의사의 친절한 말 한 마디에 마냥 감격스러워 하고 간호원의 친절을 팁으로 매수(?)하는 딱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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