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살인 무기수 9년 만에 '공범있다' 옥중편지

중앙일보

입력

단독범행을 주장하며 9년 동안 수감 중이던 무기수가 ‘공범이 있다’며 검찰에 옥중편지를 보냈다. 검찰은 즉각 재수사에 나서 공범을 검거했다.

인천지검장실에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된 것은 지난 5월 3일. 편지는 2007년 5월 인천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시 남구 도화동의 한 호프집 여주인 살해사건의 범인 A씨(당시 36세)가 보낸 것이었다.

A씨는 편지에서 “2007년에 무기형을 확정받고 9년째 수용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제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어 제 사건의 진상과 공범에 관한 것까지 자백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공범 여부에 대해) 부인했다”며 “지금에 와서 자백하고자 하는 것은 저의 심정의 변화도 있고, 수용생활도 너무 힘이 들어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벗고자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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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당시 호프집 여주인(당시 42세) 살인 용의자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경찰에 자수한 뒤 단독 범행을 주장했다. 그는 강도살인 혐의로 같은 해 10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편지를 받은 검찰은 즉각 과거 사건기록을 토대로 재조사에 나서 단독 범행으로 보기 미심쩍은 부분들을 확인했다. 또 A씨가 지목한 지인인 공범 B씨(45)의 신병을 확보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벌인 결과 당시 범행에 B씨가 동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호프집 여주인을 “술을 마시자”며 유인했다. 이후 여주인의 차량을 운전해 인적이 드문 공터로 간 뒤 신용카드를 빼앗고 흉기로 찔러 여주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빼앗은 신용카드로 560만원을 인출한 뒤 자신들의 지문을 없애기 위해 시신과 함께 차를 불태웠다.

A씨는 경찰에 자수하기 전 B씨로부터 ‘옥바라지’를 약속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단독 범행을 주장했던 이유다. 하지만 B씨의 옥바라지는 2년 만에 중단됐다. A씨가 9년 만에 공범을 밝힌 것은 B씨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A씨는 검찰에서 “2년 만에 연락을 끊은 B씨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며 “또 오랜 기간 진실을 감춤으로써 아직 사건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아 공범을 털어 놓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인천지검 강력부(박상진 부장검사)는 건설 일용 노동자인 B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30일 구속기소했다. B씨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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