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術 한국' 꽃피운 이라크 의료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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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 전쟁 폐허에서 지난 4월 21일부터 계속된 한국인들의 의료봉사 활동이 21일 석달간의 일정을 마쳤다.

'글로벌 케어 경기도 의사회'가 주축이 되고 경기도와 중앙일보가 주관.후원한 '이라크 긴급 의료봉사단'. 그동안 1만명 가까운 현지 환자들을 돌봐주면서 이라크인들의 가슴에 한국인의 인정(人情)을 깊이 심어줬다.

의료봉사에는 5개팀 1백8명의 의료진이 참가했다.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25명으로 이뤄진 마지막 5차팀은 바그다드 변두리인 사드르시티에서 사랑의 병원을 열었다.

지난 16일 오후 바그다드 북서쪽에 있는 사드르시티의 츠와데르 지역에선 10년 만에 처음으로 방역작업이 시작됐다.

의료봉사단이 한국에서 가져간 장비로 주민과 함께 연막 방역에 나선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본 장면이 신기한 듯 이라크 어린이 2백여명은 방역팀을 좇아 골목 골목 뛰어다녔다.

시아파 주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곳은 수니파가 득세한 후세인 정권의 차별정책 때문에 대표적인 빈민가로 전락한 곳이다.

다음 날 오전 지역 시민단체인 AWGHO의 사무실. 입구부터 수백명이 줄을 섰다. 한국에서 의료봉사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환자들이다.

비쩍 마른 몸에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빠졌고 치통도 심한 7세 소년 구프란, 장티푸스 증세의 아흔살 할머니 등등. 이들을 돌본 의사 정동혁(29)씨는 "좋은 항생제를 충분한 기간 복용하면 나을 질환인데 약이 부족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우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지역 종교지도자(셰이크)인 카딤 알파라투시(29)는 "걸을 때마다 양쪽 발목이 시큰거린다"며 진료를 부탁했다. 봉사단 중 유일한 한의사인 서은교(39)씨가 침을 놓자 그는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며 주위 사람들까지 데려왔다.

의사 한경민(50)씨는 "하루에 1백명 가까운 환자를 보느라 몸은 피곤하지만 그들의 눈을 보면 '마음이 통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돼 즐겁다"고 말했다.

이라크인들은 봉사단에 "슈크란(고맙습니다)"을 연발했고, 봉사단 진료실과 차량에 "알쿠리 사디크나(한국인은 우리의 친구)"라고 쓴 글을 붙여 마음을 전했다.

이 지역의 주민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미 군정 매클레리 소령은 "이곳은 빈민가에다 위험한 지역이라 다른 비정부기구(NGO)들은 엄두를 못낸 곳"이라며 "한국 의료봉사단의 용기 있고 헌신적인 활동에 미군들까지 감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전쟁의 상처로 닫힌 이라크인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바그다드=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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