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모금액등 궁금증 못풀어… 시민단체 "뭐하러 공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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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대선자금 공개는 형식적으론 의미가 있다. 역대 대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선관위에 '짜맞춘' 수입.지출 내용을 신고하고 끝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선거 후엔 "수백억~수천억원을 썼다"는 소문만 무성했지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13대 대선의 경우 "조 단위의 돈이 풀렸다"는 얘기가 돌았다.

민주당의 공개가 앞으로 정치자금의 투명화.공개화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면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단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민주당이 노린 것도 이 부분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해 대선자금 공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민주당 기대대로 전개될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이 밝힌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대충 훑어봐도 '고해성사'라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실효성 논란이 먼저 벌어질 분위기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식이라면 뭣하러 공개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의혹의 핵심은 기업으로부터 거둔 모금액이다. 이날 민주당은 일반 국민들이 소액의 후원금을 보내준 '국민성금'의 경우 은행계좌.ARS.휴대전화 등 돈이 들어온 통로를 근거자료와 함께 비교적 명확히 제시했다.

그러나 1백만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나 기업 후원금은 이를 검증할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특히 기업모금의 경우 금융기관이나 제3자를 통하지 않고 의원이나 당직자들이 1대1 대면을 통해 돈을 받아온 것이 관행이다. 은밀하게 이뤄진 만큼 늘 의혹이 뒤따랐다.

이상수 사무총장도 지난 3월 기자들과 만나 "직접 1백대 기업을 돌며 1백20억원을 모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대철(鄭大哲)대표 '2백억원 모금설'과 '10억원 토스'발언과 함께 주변에선 기업의 특별후원금이 있었다느니, 대선잔금을 주변에서 나눠 썼다느니 하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것만으론 이 부분 역시 확인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 때,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 4월 이후 받은 후원금 등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아무런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 공개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이번 공개는 "대선자금 시비를 면해보려는 일종의 국면전환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대선자금 논란은 이제부터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논쟁이 가열되면 민주당이 이번 공개에서 제외한 경선자금과 대선후보로 확정된 지난해 4월부터 선대위가 발족한 9월까지의 수입.지출 내용도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김근태 고문은 "당시 盧후보 캠프와 당이 협의해 이 기간의 선거자금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대선자금 공개의 2단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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