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렸다 되내린 취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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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습인상 됐던 건물분재산세가 물의 닷새만에 다시 전격인하로 마무리될 기미다.
여론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민정당측의 강력한 시정촉구로 정부가 건국이래 처음 있는 납세고지취소를 결단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갑자기 세금이 곱절 가까이 뛰는 바람에 분통을 터뜨렸던 중산층이상 도시민들에게는 속이 후련한 낭보이겠으나 이들 일부 수혜계층의 환영만으로 함께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태가 아닌가 싶다.
정부가 한번 결정했던 세액을 당사자의 반발이 있다해서 번복하고 깎아주는 일은 정상적인 조세행정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정부의 권위, 행정의 신뢰가 바탕에서 흔들리게 됐다.
그러나 결국 정치가 행정에 우선했다.
지방자치의 발판이 되는 재정자립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정치가 여론을 수렴한 것은 일단 평가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 허둥지둥하는 수습차원의 수렴이 아니라 사전에 입안·결정단계에서의 수렴일 것이다.
이번 내무부가 마련한 지침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종전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조정된 「개선」으로 확인되고있다.
무엇보다 전체과세가구의 61.8%가 세금이 작년보다 더 줄어드는 혜택을 입었다. 감산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금이 늘어난 가구는 전체의 약 5%. 큰집에, 잘사는 사람이 많은 서울에서만 17%가량 된다.
절대다수가 혜택을 입고 소수가 부담을 더 지게 됐으니까.
그런데도 이런 말썽이 일고 결국 정부가 권위와 신뢰를 양보하게 된 결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마디로 과정의 비민주성 때문이라고 본다. 조정방안에 대해 납세자인 국민의 사전동의는 물론, 고지조차도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합리성이 더 많은 시책을 내놓고도 일부의 반발에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의회 같은 주민참여가 보강된 상태서였다면 세금을 훨씬 더 매겼다해도 이런 상황으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치」와 정책결정 과정의 「민주」만이 강한 정부, 능률행정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문병호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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