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서 온 척추장애 유학생 "한국 기술에 푹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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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가끔 향수병에 시달리지만 한국의 선진 과학기술을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전산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생 테게그니 마로(26.사진)는 2000년 9월 한국 땅을 밟았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와 '기아의 나라'로 머릿속에 각인된 에티오피아가 그의 조국이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첫 6개월은 '악몽'과 같았단다.

2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한국은 기후부터 음식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무엇보다 집안의 유전질환으로 척추가 휜 이방인을 쳐다보는 한국인들의 눈빛이 거슬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시작됐다. 에티오피아의 명문대인 아디스아바바 대학에서 '올A'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 한국 정부의 외국인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토플(TOEFL) 성적도 6백40점으로 만점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은 마로의 신체장애를 문제 삼아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아디스아바바대 영어교육학과 교수인 부친이 강력히 항의한 뒤에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도, 청각장애인도 아니어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남들보다 쉽게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경희대 어학원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KAIST에 입학한 마로는 다음달 석사학위를 받는다. 소프트웨어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구성요소를 수학적으로 찾는 방법을 연구해 조만간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성적도 4.3만점에 3.9로 최상위권이다.

그래도 밀려드는 향수병은 어쩔 수 없는 법. 위장이 약해 매운 음식이 들어가면 꼭 탈을 일으키는데 그 때마다 마음은 에티오피아로 가 있다. 한달에 한 번 집으로 국제전화를 거는 것이 향수병을 떨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는 9월 박사과정 진학을 확정지은 마로는 12월께 3년여 만의 귀향길에 오른다. 왕복 비행기 삯이 2백만원으로, 중산층인 부친의 연봉과 맞먹는 만큼 큰맘 먹고 가는 휴가다.

마로는 "그동안 연구실 등에서 월 60만원을 받아 지금까지 8백만원 정도를 모았다. 아버지 수입의 4년치를 모은 셈"이라며 활짝 웃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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