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항공사 직원으로 변신한 前 배구선수 박선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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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남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에 들어서면 눈에 확 띄는 대한항공 직원이 있다.

1m90㎝의 훤칠한 키에 빨간 재킷을 입은 잘 생긴 얼굴에 수많은 승객을 환한 미소로 안내하는 그는 어디 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대한항공 김해공항 안내데스크 서비스팀 박선출(朴先出.30)대리.

그는 몇년 전만 해도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를 누비고 다녔던 국가대표 배구선수였다.

"공항 서비스는 배구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배구는 상대편의 빈 공간을 순간순간 포착해 허점을 찔러 속공으로 공략하지요. 서비스도 안내가 필요한 고객을 먼저 찾아, 신속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朴대리는 최근 대한항공 직원 중 고객으로부터 홈페이지(www.koreanair.co.kr)에 가장 많은 칭송 편지를 받아 '친절왕'으로 선정됐다.

'제주도 학생단체 여행객을 데리고 김해공항에 갔습니다. 시간이 급한 때였습니다. 몇백장이나 되는 단체 보딩패스를 빨리 처리해 달라고 했더니 박선출씨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와줘 결국 제 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朴대리는 선수 시절보다 더 패기있고 밝은 미소로 저희들을 대해 줬습니다. '(아주좋은 여행사 장우형)

'며칠 전 공항엘 갔으나 기상 상태가 나빠 비행기가 결항됐습니다. 난처한 상황인데 한 직원이 발벗고 나서서 기차표를 알아봐 주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배구 국가대표 출신인 박선출씨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朴선수를 공항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경남 마산에서 회사원 이정숙)

그는 고객들의 칭송편지에 대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수줍어했다.

경남 남해가 고향인 朴대리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유난히 크다는 이유로 체육선생의 눈에 띄어 곧바로 배구를 시작하게됐다.

그는 1995년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98년까지 4년간 국가대표로 뛰었고 95년 수퍼리그 우승, 유니버시아드 우승,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의 실적이 그의 화려했던 배구 생활을 보여준다.

98년 대한항공에 입사해서도 전국체전.한국 배구 대제전.슈퍼리그 등에서 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오던 그는 지난해 8월 부산공항지점으로 발령받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제 인생에서 백구(白球)를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었습니다. '화려했던 과거를 잊고 새 인생을 살자'고 말입니다."

그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장을 가진 것이 더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 승객을 안전하게 비행기로 안내한 뒤의 기쁨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공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자신을 아내(정재현씨.30)가 위로하고 격려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제 1년밖에 안됐습니다. 직장인으로는 '올챙이'죠. 더 많이 배우고 익힐 겁니다."

그는 요즘 후배 배구선수들을 만나면 "세상을 넓게 보라"고 말한다. 운동에만 매달리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김해=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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