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정의 쇠상조건|구종서<본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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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발전도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곧 잘 정치위기에 직면한다. 사회불안의 만성화와 정변의 빈발은 개도국의 일반적 특성이다.
정치안정의 기본 요소는 정치체제의 정통성과 효율성이라는 점에 오늘의 정치학은 대체로 합의돼 있다.
「정통성」(lefitimacy) 이란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통치자의 지배권을 정당화 해주고 국민의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는 원천이다.
정통성엔 집권 과정에서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권력행사의 정당성합법성까지 포함된다.
「효율성」(effectiveness)이란 집권자가 권력행사를 통해 좋은 실적을 올리는 문체, 즉 근대화의 성공적 수행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경제 발전과 질서 확립이 가장 중요시 된다.
정치란 결국 소수(집권세력)에 의한 다수(국민)의 지배다. 따라서 그 지배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강제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배 권력의 정부성이 있어야 한다.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Wirtschaft und Gesellschft·1922)에서 지배를 정당화해주는3개의 유형을 제시했다.
그 하나가 부통적 지배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관례에 따라 선발된 통치자의 지배는 정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왕조시대의 세습군주가 그 예다.
아시아의 부통사회나 서양의 봉건사회에서 보편화됐던 가부장제 지배 형태다.
다음은 카리스마적 지배다. 통치자의 초인적 능력과 신비한 매력에 권력의 타당성을 두고 있다.
이것은 변동기의 과도사회에 흔히 등장되는 형태다. 「나폴레옹」「히틀러」 등이 그 예다.
세째가 모태적 지배다. 성문화된 규칙에 따라 집권하여 통치하면 그 지배행위는 정당화된다. 근대 산업사회에 보편화돼 있는 법치주의적 지배 형태다.
그러나 그 근거가 되는 법률은 국민 동의에 바탕을 두고 적절한 절문에 따라 제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외형적으로 아무리 적법한 절차를 밟았어도 정통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베버」 의 세가지 정통성 유형의 공통점은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있어야만 통치권의 장악과 행사가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마르코스」의 경우 65년과 69년의 대통렴선거에서 합법적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공산게릴라의 위협을 구실로 국가안보를 내걸고 화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72년에 실시돼야할 대통령선거를 향략한채 자신이 계속 유임했다.
여기서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정통성은 끝났다. 정치체제가 정통성을 잃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정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리핀의 정치 소요는 그때부터 본격화했다.
그런 판국에 경제가 잘될리 없다.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과 실업률의 지속 성장은 필리핀의 만성적 풍토병이었다.
「마르코스」 자신과 측근을 포함하여 권력층의 부정 부패, 관료의 태만 비능률은 당연한 결과다. 정치의 효율성은 연목구어였다.
선거때마다 정부 여당에 의해 금력 폭력이 동원됐다. 선거의 승리는 부정선거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정권의 생명은 군경의 손에 달려있었다. 이것은 리더십의 상실을 의미한다.
저항하는 지식인 종교인·학생은 소외되고 탄압 받았다. 정권의 대중적 지지폭은 나날이 좁아갔다. 국민적 지지를 잃은 것이다. 그결과가 「마르코스」의 붕괴와 「코라손」의 집권이었다.
혁명정권의 경우 합법성은 없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얻을만한 정당성을 갖추면 정통성은 성립된다. 법 초월적 정의도 분명히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후에라도 정당한 절차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입증하고 그 정당성을 제도화 할 것이 요구된다.
5·16그룹의 경우 무력으로 집권한 후 그 정당성을 얻기 위해 내놓은 것이 「혁명과업」의 조속한 실현과 거사장교의 원대복귀및 정권의 민간화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 공약의 실행을 놓고 거사장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다. 결국 63년의 대통령선거에 박정희장군이 출마, 당선됨으로써 2년만에 정당성을 승인 받았다.
정권이 정통성을 얻었다해도 효율성의 부족으로 정치 불안을 가져오고 그같은 지도력의 부족 때문에 정통성이 약화된 실례는 많다.
60년대이후 많은 제3세계국가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내건 명분은 근대화에서의 민간정부의 무능과 비능률이었다.
후진국들이 정치의 정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해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중 하나에 우선 순위를 두게된다.
장면정부는 정통성을 증시한 나머지 효율성 제고에 실패한 케이스다. 그 결과는 국민 욕구의 과잉표출과 무질서, 그리고 5·16이였다.
박정희정부는 10월 유신을 통해 정통성을 포기하고 효율성을 택했다.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가 당시의 구호였다.
그 결과는 심각한 정통성위기였다. 결국 의식층의 도전과 그로인한 집권층의 내분, 그리고 10·26이었다.
권력의 안정에는 정통성과 효율성의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정치사는 경험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항상 요구되는 것은 안정이다. 사회학자 「제임즈듀크」는 『사회생활에서의 갈등과 권력』 (Conflict and Power in Social Life·1976) 에서 「권력안정의 최적조건」이라는것을 제시했다.
그것은 ①고도의 정통성 ②모든 사회세력의 통합 ③권력층에의한 착취의극소화 ④대중욕구의 적절한 충족 ⑤사회변동과 외부 위협의 억제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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