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실이 늪이 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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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낙타에서 캐딜랙으로」(From Camel To Cadillac).
중동 최대의 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부러운 발전과정을 한마디로 농축시킨 표현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우리의 틀에 맞추어보면 언뜻 이해가 안가는 요소들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나가 있는 우리의 52개 건설업체, 4백여 현장에는 「견실」과 「부실」이라는, 함께 하지 말았어야할 상반된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
지난 73년 삼환기업이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해외건설 전체를 놓고 따져본 손익계산서는 아직 나온 일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이곳 저곳에 널려있는 부실현장의 늪은 서울에서 한은의 특융 통계나 시은의 부실대출계수, 건설업체의 영업실적 등을 통해 파악되던 것보다 더 깊고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리야드에서 파악된 우리 건설업체들의 간단한 「신상메모」들을 다시 들춰보자.
◇경남기업=84년12월 대우에서 인수, 지금은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 인수당시 3천만달러(당시 약2백50억원)를 서울에서 가져다 밀린 노임·자재 대금 등을 청산.
◇공영토건=82년 이·장 사건 당시 계약잔액 3억 달러에 진출인력 4천명. 이후 동아건설이 맡아 8개 현장의 공사를 끝내고 4개 현장은 하자 보수 중. 현재 잔류인원 5백명선.
◇국제상사 (건설부문)=78년 이후 지금까지 20개 현장 약12억 달러 수주. 현재 대부분이 완공 또는 최종인도단계. 주로 상·하수도공사에 주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 분야에 주력할 예정.
◇극동건설=76년 이후 33건 수주. 지금까지 별 문제없고 신규수주에 노력 중. 기성금 수령 지연되고 있는 사례 있음.
◇금호건설=84년 이후 신규수주중단. 현재 계약잔액 4백만 달러. 광주고속과 합병이후 주베일 등 3개 현장 가급적 빨리 마무리짓고 철수 예정.
◇남광토건=84년 8월 쌍용종건 위탁경영 당시 계약 잔량 2억1천만달러, 지금은 1천8백만 달러. 2년 이상 미 해결된 악성미수금 1천5백만 달러 중 그간 6백만 달러 회수. 현지에서의 신용 회복되고 있으며 신규수주 할 수 있는 길 터주기 요망.
◇동산토건=78년 이후 9억 달러 수주, 그간 모두 공기내 완료. 현재 계약잔량 3천만 달러. 미수금 없음. 그간 가급적 공개입찰 피하고 수의계약, 사전수주심사공사에만 참여.
◇동아건설=현재 8개 현장 1억9천7백만 달러 잔량. 올해 수주목표 1억1천만달러. 브라이다 주택공사 현장 2년간 공기 지연되고있어 현재 공기연장 신청 중.
◇라이프주택=현재 3개 현장 약1천1백명 잔류. 올6월말 모두 완공되면 철수예정. 현지부채는 기성 수령금으로 충당가능하나 국내부채는 원리금 상환 연장 요망.
◇롯데건설=85년 이후 수주 중단. 현재 3백만 달러의 잔량 있으나 올8월 완공예정. 발주처의 공기연장 승인이 났는데도 재무성 승인이 안나 3백만 달러 유보금 아직 미해결.
◇삼부토건=2건 1억 달러 잔량, 신규수주 안하고 있음. 공사가 다 끝나 발주처가 사용하고있는데도 행정처리가 늦어져 유보금 못 받는 사례 있음.
◇삼익주택=현재 5개 현장. 모두 하자보수 중. 내년초 철수 계획.
◇삼호=1억3천만달러 잔량. 대림이 맡아 4개 현장 중 3개 현장 예비인도 완료.
◇삼환기업=1억3천만달러 잔량, 악성미수금 없음. 처음부터 선별 수주, 원가관리. 30%하청 의무 비율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처방안 모색 중.
◇신화건설=석유화학 플랜트하청 위주로 잘 돌아가고 있음.
◇정우개발=1개 현장 시공 중, 3개 현장 하자보수 중. 장기 미수금 6백만 달러. 그간 경영활동분석결과 원청보다 하청이 수익성 좋았다는 결론.
◇진흥기업=5건 하자보수공사만.
◇풍림산업=플랜트 전문으로 현재 8천만달러 잔량. 큰 문제없음.
◇한라건설=역시 플랜트 위주. 현재 3건 1억3천만달러 잔량.
◇한신공영=현재 2개 현장 시공·하자 보수 중.
◇한양=5개 현장 3억9백만 달러 잔량.
◇현대건설=74년 이후 74건 74억4천8백만 달러 수주. 현재 16개 현장 17억5천8백만 달러 잔량.
더욱 상세한 메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모 건설사는 내년초쯤 간신히 공사를 끝내고 최종 정산을 마친 후 철수하더라도 그간 공기지연 등으로 걸린 페널티를 따지면 발주처측에 돈을 더 물어내고 떠나야만하게 돼 있다.
그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번돈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상태로서는 계속 우리 돈을 들여다 발주처측의 공사를 해주고있는 셈이며, 당장 앞으로도 공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약 1천1백만 달러 (약98억 원) 의 추가자금지원이 있어야만 한다.
또 다른 건설업체인 모사는 현재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는 회사로 지난 1년간 약 1억 달러의 자금지원을 받아 공사를 수행해왔으나 앞으로도 약 2억 달러의 공비가 더 투입이 되어야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물론 그만큼을 전부 손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현지금융차입·국내금융지원이 불가피한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리고 부실치유의 희망은 없는 것일까.
해외건설부실화의 전형을 우리는 「알카르지」주택공사 현장에서 볼 수 있으며, 한가닥의 밝은 희망은 대우가 인수한 경남기업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리야드에서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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