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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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선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지 모르다가 다 같이 아는 누군가의 이름이 대두되면 점차 화제가 무르익게 마련이다.
없는 사람에 대해 한참 떠들다가 급기야는 점차 입을 다물게 되는데, 그것은 나중에 따라오는 구설수가 두려워서이며 동시에 자신의 경솔함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다음 이야기는 대개 공통적인 불만거리나 비평거리를 발견하게 되면서 또 한번 꽃이 피게 되는데, 이러한 자리를 얼마전에 갖게 되었다.
이 날의 화제는 공연장에 관해서였다. 우리는 다같이 근래에 와서 점점 공연장에 가기 싫어진다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는데, 같은 이치로 따지면 자신도 역시 타인에게는 마찬가지의 존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지만 공연장에서의 허례허식이 역겹다는 것이었다.
로비에서 만나는 이들이 서로 교환하는 가식의 미소, 몸조심하는 듯한 침묵, 모호한 립 서비스, 판에 박은듯한 찬사, 그리고 진정으로 공연을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의무적으로 이 자리에 와준 것을 당연히 드러내는 뻔뻔스러움이 정말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직도 자발적으로 공연을 보러 와서 자기 마음에 들지않을 때 중간에라도나갈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진 이는 찾기 힘들다는 사실에 우리는 합의했다.
또 다른 스트레스는 대거 동원된 학생들이나 어린 아이를 동반한 출연자의 가족들이 내는 소음의 횡포.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 굴러가는 빈 깡통 소리, 바스락거리는 과자봉지 소리, 공연도중 계속해서 출연자에 대해 소곤거리는 소리가 그것들이다.
이들은 대개 공연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부수적인 것에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이는데, 숫자적으로 우세한만큼 그날의 공연장 분위기는 이들에 의해서 좌우되게 마련이다.
로비에 전시되는 화환들의 똑같은 모양 역시 우리들의 비판거리가 되었는데, 그 상층부에서 늘어뜨려진 핑그색 리번 위에 검정 먹물로 거창하게 쓰여진 단체명이나 이름이 너무 과시적이고, 또 티킷을 사는 관객이 아직도 많지 않은 가난한 한국의 공연예술 실정에 비해 모순되는 낭비라는 것이었다.
이런 누워서 침뱉는 이야기들을 열띠게 하고 난 후 결국 느끼는 것은 이 모든현상에 대한 책임은 공연자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피나는 노력이 없는, 서푼 가치도 없는 그림에 금테를 두른 액자를 관객에게 내미는 한 관객은 진정으로 그 예술 자체를 보고싶어 하기보다 「괴테」 가 말한 『예술을 둘러싼 소음에 이끌려 오는 무리들』 로 계속될 것이며, 그리하여 진정으로 그 작품을 보고자 온 이들에게는 환멸감을 주어 영원히 공연장으로부터 발길을 끊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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