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새로운 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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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9대 대법원장에 김용철 법원 행정 처장이 내정된 가운데 대법원 판사 9명이 새로 선임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탄핵 안 발의」라는 홍역을 치렀고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회자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법부 최고 기관인 대법원 개편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법관 인사와 법원 행정 사무를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대법원장 외에도 「권위와 양심」으로 상징되며 하급심을 구속하는 판례를 세우는 최고 법원의 법관 13명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9명의 교체는 단순한 개편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구성 여하에 따라 사법부의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고 권위와 존경과 신뢰를 굳건히 할 수 있는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법부는 우리 헌법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는 기관이다. 국민의 기본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다. 이를 위해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이따금 헌법 정신 구현에 미흡한 듯한 인상을 받고 사법부 독립이 의심을 받아 끝내는 사법부 신뢰에 금이 가게 한 것은 결국 사법부 운영에 열쇠를 쥔 고위 법관들이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사법부, 그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덜 신뢰받는 사법부가 된다면 국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못 받는다면 권위는 있을 수 없고 법관의 말이 힘을 발휘할 리도 만무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개편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주안점을 둔 인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너른 시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며 풍부한 법률 지식과 법조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어야 한다. 사물을 외곬으로만 보거나 안정된 현실 감각이나 평형 감각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바람직한 사법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
또 모든 법관의 수법이 되고 민주 의식이 투철한 인사를 영입해 사법부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종전의 판·검사 출신에 국한하던 인선을 다양화해 재야 법조계나 학계에서도 영입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변호사 경력을 쌓은 뒤에야 법관이 될 수 있어 연방 대법원 판사가 모두 재야 경험이 있는 법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최고 재판소 역시 판사 14명 가운데 변호사 출신 4명에 교수·외교관·행정관 출신 3명이 포함되도록 구성 비율을 정해두고 있다.
외국의 예를 반드시 따라야한다는 것보다 사법권의 권능이 사회의 여러 계층과 집단의 갈등을 조정하고 소수자에게도 설자리를 보호해주는데 있는 만큼 사회의 여러 주장들이 적절히 반영되는 체제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선의 다양화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 판사의 권한과 기능이 막중하고 사법부는 물론 국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상응한 각계의 의견을 청문하고 심사와 숙고를 거쳐 매듭지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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