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누리 혁신 친박 패권 청산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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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이 어제 전당대회를 열고 이정현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새 대표는 14년 만에 부활된 단일지도 체제의 수장으로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다. 보수 정당 첫 호남 출신 대표여서 나름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이 신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한 핵심 친박이다.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도 대부분 친박계여서 친박 주류가 김무성 전 대표의 비주류를 교체하고 당권을 다시 거머쥔 의미가 더 크다.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여당 새 지도부에 걸린 기대와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하고 대선 때까지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1차적 과제다. 하지만 이와 함께 총선 참패 후 지리멸렬한 당의 모습을 털어내고 중도에서 좌절된 혁신을 다시 실천하는 것 또한 중차대한 과제다. 집권 여당의 구조와 체질을 확 바꾸라는 게 총선 민심이었다. 하지만 국민은 총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겪은 새누리당에서 대오 각성과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수술하겠다’며 출범한 혁신비대위는 ‘맹탕 비대위’에 ‘갈등 비대위’로 끝났다. 출범 당시 김희옥 위원장은 “당명만 빼고 모두 다 바꿔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당 혁신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실행에 옮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친박과 비박의 계파 다툼 속에 혁신과 개혁은 처음부터 설 자리가 없었다. 당내에서조차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새누리당에 가장 시급한 정치 혁신은 국정의 핵심 축인 집권당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대야(野) 협상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대통령에겐 직언 한마디 못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친박 핵심들이 대통령의 뜻을 팔아 공천을 협박하는 녹음 테이프가 공개됐지만 새누리당은 조사를 포기하고 반성도 없었다. 비대위가 임명한 윤리위가 최소한의 윤리적 조치조차 취하지 못할 정도로 새누리당은 친박 패권의 압박에 짓눌려 있는 식물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친박계에 당권을 몰아줬다. 이 신임 대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엔 친박, 비박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올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새누리당은 대대적 쇄신으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올바른 당·청 관계를 만들고, 공천 협박 등의 해당 행위엔 철저한 조사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또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과 친박 패권 세력의 막무가내식 공천이 총선 패배의 핵심 원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새 출발점 역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뼈를 깎는 혁신 없이 ‘계파 해체’만 외치는 것은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서조차 ‘박 대통령의 임기 말을 철통같이 보위할 친위 정당’이란 분석이 나온다면 새누리당엔 미래가 없다. 가뜩이나 대한민국은 경제와 안보의 복합 위기다. 국민은 집권당의 변화된 모습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