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일부 단과대학에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을 도입하려는 계획은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지적대로 지금과 같은 전공과목 중심의 학부제는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비롯해 각 대학들이 시행 중인 학부제는 해당 학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교수들은 생존권이 위협받기 때문에 반대하고, 학생들은 취업이 잘 되는 인기학과에만 몰리는 바람에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분된 학과를 역사학.경제학.생물학.전기공학 등 작은 단위로만 통합하려했기 때문에 해당 학과의 반발이 컸다. 이러한 중간단위의 통합이 실패함으로써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대단위 학부제로 발전이 불가능했다.
학부대학은 미국과 유럽의 대학처럼 인문.사회.자연과학을 포함하는 기초과학대학의 학사과정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구상하는 학부대학은 1~2학년 때는 기초 중심으로 넓게 가르치고 3학년 때 학과를 선택해 기초가 튼튼한 인재를 배양한다는 것으로, 현재의 학부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왕 시작하려면 외국 대학처럼 인문사회과학계열.자연과학계열.공학계열을 설치하고 한개 이상의 계열에 속하고자 하거나 특정한 계열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학생을 위해 통합계열을 두는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와 학생들만으로 집단을 형성하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대학 풍토에서 학부대학은 학부제처럼 뿌리내리기 힘들다.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 전제돼야 한다.
또 학과 단위로 경쟁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연구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과거에도 이와 같은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으나 결국 대학의 학과 중심 이기주의 때문에 시행할 수 없었다.
이번 제안도 먼저 서울대가 어떤 대학을 지향할 것인지 기본틀을 세우고, 학내 동의를 얻고, 수험생들에게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어야 한다. 2005년 시행이라는 시한에 매이지 말고 충분한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