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유전 의혹' 공방… 여 "무협지 같아" 야 "권력형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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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철도공사 부사장은 20일 "철도진흥재단 이사로 있던 지난해 9월 이사회에서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으로부터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에 대해 보고받은 바 있다"며 "당시 왕 본부장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사업을 밀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최 부사장은 국회 건교위에 출석,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최 부사장은 또 "왕 본부장이 '이광재 의원이 뒤를 밀고 있어 안정성이 있다'고 말해 제가 '결국은 사업주체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 있느냐'고 지적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의원들은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을 놓고 파상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유전사업 의혹의 핵심 3인방인 김세호 건교부 차관,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출석해 집중적인 질문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여야 간 질문의 초점은 달랐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철도공사의 도덕적 해이를 집중 추궁했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유전 개발 의혹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이 의원의 개입 여부를 따졌다.

◆ "실세가 관여한 것"=이날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과 왕 본부장은 설전을 벌였다. 먼저 한 의원이 왕 본부장에게 "누가 사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느냐" "사장이나 청장의 특별한 지시는 없었느냐"고 수차례 따져 물었다. 왕 본부장은 줄곧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그 과정에서 한 의원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당신만 입 다물면 다라고 생각하느냐" "이광재 의원을 만났나, 안 만났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왕 본부장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같은 당 안상수 의원은 "왕 본부장은 지난해 8월 12일 회의록에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가 사업 참여를 제안했다고 언급했지만 나흘 뒤인 16일 신광순 당시 철도청 차장에게 보고한 문서에는 'NSC 외교안보위'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NSC 측은 그러나 "NSC 사무처 출범이후 '외교안보위'라는 조직 자체를 둔 적이 없다"며 "황당무계한 억지주장"이라고 반박했다.

◆ "도덕적 해이다"=열린우리당 장경수 의원은 "유전 개발 사건은 민간업자가 개입한 사기사건"이라며 "하지만 철도공사는 사업의 재무상황조차 검증하지 않고 계약한 만큼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정장선 의원은 "철도공사의 투자 정황을 보면 마치 진실을 알 수 없는 무협지를 보는 느낌"이라고 비꼬았다. 같은 당 박상돈 의원도 "철도공사의 유전투자는 토지공사가 우주개발에, 도로공사가 원양어업에 손댄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한편 김세호 건교부 차관은 "이 사건은 왕 본부장만 책임질 일이냐"는 조경태 의원의 질의에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질 것"이라고 답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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