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가야 할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개표의 중단과 속개가 반복되면서 1주일을 넘긴 필리핀 대통령선거는 50%의 개표 율을 보이는 가운데 64대59로「마르코스」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 야당들과 국제여론이 이 결과에 승복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선거결과는「마르코스」의 승리로 공식화 될 것은 확실하다.
「레이건」미 행정부도 그 공식결과를 기정사실로 인정할 태세다.
문제는 그후의 필리핀사태에 있다. 지금으로서는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야당진영은 16일 마닐라에서 대규모 군중 집회를 열어「코라손」후보의 당선을 선포하고 납세거부와 파업. 시위를 통해 정부에 대항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마르코스」대통령은 발표된 자기의 승리를 수호하기 위해 군경을 동원하는 등 만반의 대책을 세워 놓고 있다.
이런 사태는 최근 수년간 지속돼 온 필리핀의 정치혼란. 국민분열. 경제후퇴를 더욱 촉진시켜 공산게릴라의 도전을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필리핀이나 자유세계 전체를 위해 다같이 ,불행한 일이다.「레이건」대통령이「하비브」특사를 보내 필리핀의 각 세력과 정파간의 화해와 단결을 주선하려 하고 있지만 그 성공가능성은 미지수다.
필리핀의 사대를 놓고 미국에서도 논쟁이 심하다.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마르코스」의 현상유지를 지지해 온「레이건」행정부에 대해 일반여론의 공감이 약하다.
11일자 뉴욕 타임즈 지는 선거후의 필리핀사태를 비극적으로 전망하면서『미국이 필리핀이나 미국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마르코스」의 망명을 주선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우리는 필리핀에서 누가 집권자가 되든 관여할 일이 못된다.
그러나 정치사회의 보편적 원리대로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게 실시돼 야하며 그래야만 모든 국민이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필리핀의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화해와 단결을 통해 파국에 이른 국가를 재건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사심 없는 애국적인 대 타협이 필요하다.
필리핀은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도 민주주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이 분극화(polarization)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여 각 요소가 균형과 견제의 상호작용을 계속하되 분열과 혼란을 초극할 때 비로소 안정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필리핀 정치지도자들의 구국을 위한 현명한 결단과 타협을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