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변협 회장 "언론이 자격으로 헙법 소원 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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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헌 결정이 내려진 김영란법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인 중에는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포함돼 있다. 지난 해 3월 헌법소원을 청구한 하 회장은 결국 소기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김영란법 규제 대상이 아닌 변호사가 어떻게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당사자 자격을 갖게 됐을까. 김영란법은 공무원과 사립학교ㆍ유치원 교직원, 언론인 등을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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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중앙포토]

하 회장이 대한변협신문을 만드는 언론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올해 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도 언론인이다. 대한변협에서 '대한변협신문'을 만드는데 발행인이 바로 나"라고 설명했다.

협회 회원을 상대로 하는 변협신문을 만드는 변협도 엄연한 언론사다. 김영란법의 언론사 기준은 '언론중재 및 피해주게 등에 관한 법'을 준용하는데,이 법에 따르면 주 업무가 언론활동인 고유 언론사 외에 사보, 협회지 등을 발행하는 기업과 각종 협회들도 언론사에 해당한다.

하 회장이 언론인의 자격으로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처럼 일반 기업들도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서 정보간행물로 등록된 것은 예외다. '잡지' 또는 '기타간행물'로 분류되는 경우가 적용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언론사는 방송 345곳, 신문 3221곳, 정기간행물 7098곳(잡지 4893, 기타간행물 2259) 등이다. 상당수는 일반 기업으로 추정된다.
사외보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사외보를 계속 발행할 경우 회사 전체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영업활동에 필요한 접대 행위도 불법이 될 소지가 크다. 분기별로 사외보를 발행하는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고객 관리나 협력업체 영업을 위해 골프 접대를 하거나 식사 등의 접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영란법을 적용하면 이런 영업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고객 관리를 위해 사외보 제작에 각별히 신경 쓰는 금융계의 경우 고민이 더 크다. 한 시중은행은 일정 금액 이상 자산가인 vip 고객에게만 제공하는 월간 사외보를 폐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약 80만 부를 발행하는 아모레퍼시픽(잡지명 '향장')과 '건강의 벗'(발행부수 17만부)을 발행하는 유한양행도 법률 검토 중이다.

불똥은 엉뚱하게도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인 출판ㆍ인쇄업계로 튀고 있다. 기업의 사외보는 대부분 출판업체가 외주제작하기 때문이다. 사외보를 폐간할 경우 이를 제작해 기업을 운영해온 출판ㆍ인쇄업체들에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사외보 외주 제작업체 관계자는 "한두 개 사외보를 전문으로 만들며 빠듯하게 운영해오고 있는 편집 디자인 업체들의 경우 일감이 줄어들면 편집디자이너들이 첫 번째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보협회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출판ㆍ인쇄업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며 "법률 검토와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권익위에 정식으로 의견을 제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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