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채병건 특파원, 현장을 가다] 클린턴과 8년 앙숙 미셸 “우리 친구, 그녀와 함께 가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사 이미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AP=뉴시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25일 오후 10시(현지시간)쯤 대회장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센터에서 갑자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연단에 등장하면서다. 대회장을 메운 대의원과 참석자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이어갔다. 미셸은 “오늘 아침 노예들이 만들었던 백악관에서 일어나 나의 아름다운 흑인 딸들이 개를 데리고 노는 것을 봤다”며 “(힐러리) 클린턴으로 인해 내 딸들이, 우리 모두의 아들과 딸들이 여성도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미셸 “오늘 노예가 만든 백악관에서
내 흑인 딸들이 개와 노는 것 봤다”
WP “완벽 홈런, 더 나은 연설 힘들 것”
샌더스도 30분간 전폭 지지 연설
“리더십으로 보면 꼭 클린턴 돼야”
대회장 안팎서 샌더스 지지자 시위

이 순간 미셸은 목이 멘 듯 잠시 연설을 멈췄고 대회장은 일순 숙연해졌다가 다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미셸은 이어 “우리 친구 클린턴이 유일하게 미국 대통령이 될 진정한 자질을 갖췄다”며 “나는 그녀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해선 “그들이 낮게 갈 때 우리는 높게 가는 것, 이것이 모토”라며 또 박수를 이끌어냈다. 기립 박수에 나선 이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완벽한 홈런”이라며 “전당대회의 남은 3일간 미셸보다 더 나은 연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셸과 클린턴은 8년 전 민주당 경선 때의 앙금 때문에 불편한 관계로 유명하다. 미셸이 클린턴 국무장관 시절 클린턴 부부를 백악관 만찬에 부른 적이 없고 클린턴 역시 미셸을 ‘대통령 부인 자격 미달’로 경멸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이날 뉴욕타임스는 “미셸이 전임자(퍼스트레이디)이자 과거의 적에게 힘을 보탰다”고 전했다.

기사 이미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30분간의 격정 연설에서 ‘클린턴 대오 단결’을 호소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클린턴 지지 연설에 이어 샌더스가 나설 땐 대회장에 “버니” 연호가 계속되며 ‘샌더스 전당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연호 때문에 샌더스가 5분간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을 정도다. 샌더스는 “경선 결과에 나보다 실망한 사람은 없었다”며 지지자들을 달랜 뒤 “클린턴의 생각과 리더십으로 보면 반드시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녀(클린턴)와 함께해 자랑스럽다”고도 말했다. 전당대회 첫날은 이렇게 환호와 박수로 일단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시간 전까지만 해도 대회장 안팎에선 분노한 샌더스 지지자들로 혼란이 계속됐다.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샌더스에게 불리하게 경선을 진행한 흔적이 담긴 e메일이 폭로된 후 샌더스 지지자 500여 명은 이날도 시청 앞을 차지했다. ‘클린턴을 감옥에(lock her up)’라는 구호가 또 튀어나왔다. 대회장 앞까지 행진한 지지자들은 샌더스가 직접 나와 자제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야유로 반발했다. 일부는 대회장에 들어가겠다며 철제 펜스를 넘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50여 명이 체포됐다.


▶관련 기사
① 계파 싸우느라…‘의원외교 꽃’ 트럼프 전대 놓친 새누리
② 트럼프,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여론조사 4개 중 3개에서 앞서



이날 오후 4시 전당대회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야유로 시작됐다. 개회 선언 후 축하 기도에 나선 신시아 헤일 목사는 야유 때문에 기도를 잠시 중단해야 했다. 급기야 샌더스는 대회 파행을 막기 위해 지지 대의원들에게 “대회장에서 시위에 나서지 말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1층에 앉아 있던 조앤 테일러 메릴랜드 대의원은 “버니를 너무 사랑해서 클린턴으로 가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장은 파행을 피한 대신 “노(No) TPP” 함성으로 마무리됐다. 샌더스는 연설 말미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처럼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즉각 대회장은 ‘노 TPP’를 연이어 외쳤다.

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