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주도 당 운영 기틀 마련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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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은 31일 의원 총회에서 석 달을 끌어오던 조연하·김옥선의원에 대한 징계를 확정, 매듭지었다.
의원총회의 표결에서 징계 반대 또는 기권이 16표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주류 측의 세력 과시와 함께 앞으로 당운영에 있어서도 주류 측의 페이스대로 비교적 일사 불란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셈이다.
이민우 총재와 김대중·김영삼씨를 중심으로 한 주류 측은 본격 개헌 투쟁 전개를 앞두고 당 지도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 등 당내 잡음에 쐐기를 박고 비주류 측의 공격도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게 됨으로써 당내 결속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표결 결과는 징계 강행에 대해 많은 소속의원들이 회의와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부결 될 경우 당이 받을 상처를 고려해 당의 체면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많다.
또 이번 징계처리가 김대중씨의 요구를 김영삼씨가 받아들여 다소 무리를 무릅쓰고 강행했다는 점에서 김영삼씨의 입당후 두 김씨의 협조 체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다.
김영삼씨로서는 입당에 앞선 「환경정리」가 이루어진 셈이 되어 입당여건과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번 징계처리에 대해 개헌투쟁 등 중대사를 앞두고 자칫 당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모험을 굳이 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주류 측을 중심으로 한 이런 불만은 앞으로 다른 문제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 징계강행이 김대중씨 개인감정에 의한 보복이란 인상을 풍긴 점도 지적되고 있다.
63대 16이란 표결 결과를 바로 주·비주류의 세력 분포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표결에 불참한 10명의 의원 중에는 비주류가 많기 때문에 최소한 65대 25선은 된다는 분석도 있다. 주류일각에서 제기된 이철승 의원 징계론을 주류 측이 이번 표결결과를 믿고 본격적으로 제기 할 경우 심각한 내분상태가 조성될 수 있다고도 본다.
징계 당사자인 조·김 의원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도 주목거리. 조 의원은 『신민당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번 자격정지 2년이란 징계는 다음 공천에서의 탈락 가능성과도 연결되는 것이어서 이들 두 의원이 어떻게 소화 할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에서는 두 의원이 신보수회 쪽으로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징계안의 표결결과 조 의원이 찬63, 반12, 기권4, 김 의원이 찬69, 반9, 기권1로 가결 된데 대해 대 다수 의원들은 『예상했던 대로였다』는 반응.
조 의원을 옹호한 징계반대·기권 16표는 순수 비주류에서 6∼7표, 공천 과정 등에서 얽힌 개인적 친분관계와 일부 소외층에서 10표 정도가 나왔으리라는 분석.
이날 투표는 조·김 의원에 대해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 표결을 시작한지 30여분만에 종결.
참석인원은 와병중인 김영배·고한준 의원이 1차 투표 중 뒤늦게 참석함에 따라 외유 등으로 인한 부득이한 불참자 외에는 80명 전원이 참석한 셈이나 당사자인 조 의원은 표결에는 불참.
1차 투표가 끝나자 조 의원은 결과도 보지 않은 채 『다 끝났다. 서명 운동도 않고 편안히 쉬게 해주려나』라며 침통한 표정으로 부의장실에 올라갔다.
이어 2차 투표마저 끝나자 이택돈·허경만 의원은 『꼭 이래야 하는지』라며 총총히 회의장을 먼저 빠져나갔고 대부분의 의원들도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의사당을 떠났다.
표결결과가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자 당지도부와 주류측 의원들은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침울한 분위기.
이민우 총재는 표결이 끝나자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본인의 자숙과 주위의 노력으로 조속한 원상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하자』고 인사말을 한 뒤 총재실로 가 이중재 부총재 등 당직자들과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
이기택 부총재는 『창당 작업을 함께 했던 사람을 내 손으로 징계해야 하다니 기분이 씁쓸하다』고 했고, 김동영 총무는 일체의 논평을 거부.
그러나 유제연 사무총장 등은 조·김 의원이 2년 자격정지가 최종 결정됨에 따라 공석이 된 정무위원 2석을 주류 측이 곧 보충할 것임을 밝히고 조·김 의원의 지구당도 『급하지 않지만』 곧 사고 당부로 판정하는 등 앞으로 주류중심의 일사불란한 당 운영이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
한편 비주류 측은 이날 의총에서 이철승 의원의 연두기자회견에 대한 비난 발언이 없었던 점을 은근한 소득으로 간주했던 탓인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불유쾌한 표정도 아니었다.
조 의원은 자신에 대한 1차 투표가 끝난 상오 10시50분쯤 부의장실로 돌아가 『사실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 마저 그렇게 됐을 때 (부의장 파동지칭) 당이 입게 될 상처를 생각하니…』라며 미리부터 징계안 가결을 각오한 눈치.
조 의원은 『이번 일을 당하고 나니 나이 탓인지 옛날이 그리워지더라』며『인간은 정 없이 살수 없는 것인데 수십 년 동안 고락을 같이 했고 양외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내가 져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심정도 있었다』고 김대중씨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피력. 조 의원은 이어 이 총재의 「조속한 구제운운」에 대해 『정치인이라면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면서 『지구당 문제에 대해서도 아직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부연.
조 의원은 또 표결 결과가 뒤늦게 전해지자 『앞으로 거취나 내 마음은 시간을 더 두고 생각해 봐야겠다』면서도 『내 심정은 당이 아무리 나를 버려도 내가 신민당을 버릴 생각이나 이유는 없다』고 짧게 소감을 피력. <허남진·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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