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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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개구장이 딸아이가 자기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던지 몇 번 방바닥에 내던지는 통에 고장이 나버린 손목시계를 앞에 놓고 남편은 고민을 한참하고 있었다. 과연 시계를 새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남편은 며칠동안이나 끙끙거리는 눈치였다.
고민하는 그이의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할게 있느냐. 아예 내친 김에 새 시계를 하나 사서 기분을 좀 새롭게 가져보라고 조언했다. 이미 시계는 수명을 다해 고쳐봐야 오래 쓸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묵묵부답이던 그이가 어제 저녁에서야 무슨 생각이 났는지 휑하니 시계 방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나가는 것이었다.
한참 뒤 돌아온 남편은 고장난 시계를 고쳐서 차기로 마음먹고 시계 방에 수리를 부탁했는데 수리비가 2만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펄쩍 뛰며 새 시계도 아닌 고장난 시계 수리비가 너무 비싸고 아깝다고 푸념하며 당장 다시 찾아오라고 강권했다. 2만원 씩 주고 고치느니 그 값 돈을 좀더 보태더라도 새로 하나 장만하는 것이 경제적이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물끄러미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자기도 그렇게 하면 간단하겠지만 결혼할 때 당신한테 받은 선물이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 시계를 사준 처형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라 그 마음을 함부로 저버리는 것 같아 미련 없이 내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남편은 싱끗 웃어 보였다.
남편의 그 말에 나는 아무생각 없이 경제성만을 따지고 이악스럽게 군것 같은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 나를 생각하고 우리의 결혼생활을 소중히 지켜가려는 남편의 애정 어린 태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경남거제군장승포읍 4 구449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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