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명(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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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5년 동안 내리 신춘문예 예심을 맡아 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마다 응모작품의 일반적인 경향의 다양한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0년대로 들어서는 초반의 3년 동안은 산업사회에서 빚어진 빈부의 격차문제와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을 다룬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금년 신춘문예 용모작품은 또 다른 양상용 띠고 있어 예심자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응모작의 대부분이 가족문제로 옮아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 형을 미워하는 동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유의 작품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기성작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즐겨 다룬 소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응모자들은 기성세대가 다룬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에다 정치 경제·사화 문제의 일반적인 갈등 구조를 풍자적 알레고리 형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주목된다.
알레고리란 두말 할 것도 없이 정면대결을 회피한 수법이다. 이런 저런 사유로 인해 몹시 위축되어 있는 기성작가도 아닌 신진 세대들의 이런 움츠러든 태도가 과연 바람직스런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문제를 가족관계 속으로 끌여 들이는 것은 쓰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일지 모르나 정면대결을 피하는 안이한 자세로 보인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 개방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 표현의 자유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이모저모 제한을 받고 있다.
이것은 써도 좋고, 저것은 써선 안 된다고 일일이 간섭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무엇을 쓰기는 어렵고, 무엇은 쓸 수 있다는 점을 육감으로 알아차려야 작품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기성작가들은 익숙해 있다. 하지만 패기와 야심에 찬 신진들마저 벌써 눈치꾸러기로 변신해 있다는 점은 우리 문학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스런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할 숙제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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