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협」정치는 이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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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민우 신민당총재의 기자회견은 여당의 「큰정치」제의에 대한 공식대응이라는 점에서 주목 되어왔다.
이 총재는 일단 정부·여당의 개헌논의유보제의를 거부하고 국민에게 정부선택권을 되돌려주는 일이야말로 2·12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적 합의였다고 주장, 구체적인 민주화 일정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촉구하면서 1천만 개헌서명운동을 2월중에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의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오로지 민주화 만이라고 본 신민당의 일관된 기본입장에 비추어 이 총재의 거부선언은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총재의 회견에서 드러난 신민당의 입장은 부분적 동의도 내포하고 있고 영수회담을 통한 대화가능성을 타진한 대목도 있다.
말하자면 집권측 제의를 거부는 하되 그것을 상대방 나름의 원칙천명으로 인식하고 그 괴리사이에서 어떤 합의를 도출해내자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정부·여당이 내보인 카드와 신민당의 대응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상극되는 두개의 입장이 쉽사리 합의점을 찾기는 물론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12대 국회 들어서 사사건건 대결로만 치닫는 요인들이 난국을 푸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새해 들어 여야가 제시한 정국에 대한 기본인식이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히 한 이상 지금부터 있을 대화와 타협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화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주장을 경청하는데서 출발하지만 구체적으로 양보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막무가내로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일방적인 설득만 펴려한다면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집권측 외 「큰 정치」나 야당의 민주화 요구도 궁극적으로는 당리당략이 아니고 큰 테두리에서 나라의 발전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그 논리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국가의 장래를 논의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총재는 회견에서 현대통령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이후 차기 통치권자가 해야할 일에 대해 미리 언급한 것이 어떤 종류의 통치질서 구상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등 3개항의 질의를 던졌다. 그것은 여당측 제의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차원을 떠나 적어도 앞으로 있을 여야간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의 천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신민당의 복잡한 당내사정이나 재야와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화와 타협을 하려면 외곬으로 원칙 논에만 매달리지 말고 현실주의적인 접근방법에도 숙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국주도의 책임이야 물론 여야에 같이 있는 것이지만 야당보다는 여쪽의 역할이 더 중요함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은 야당이 대화와 타협에 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지금 여야에 다같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호양의 정신이다. 한쪽의 완승이나 한쪽의 완패로 참다운 정국안정은 이룩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할 때다.
양측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상 어떤 형식이건 대화의 장이 마련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자리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아니고 보다 큰 테두리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서로 신뢰를 쌓는 기본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각자 성실한 노력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평행선을 긋기만 한 여야의 입장과 시각이 「대타협」으로 이어지기를 다시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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