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의 대입 불합격 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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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과 며칠전 우리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해발 2천m의 한라산을 정복한 신체 장애 청소년들의 의지와 분투에 뜨거운 찬사와 격려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그 감동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안타까운 소식에 접하고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학력고사에서 3백4점의 높은 성적을 올린 학생 등 3명이 신체 장애자라는 이유로 모 의과 대학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학은 금년도 신입생 합격 사정에서 이들 소아마비 남녀 수험생 3명을 1차 시험에는 합격시켜 명단까지 발표해 놓고 면접·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학교측은 『정상적인 학업에 지장을 준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합격시키지 않는다』는 학칙에 따라 이렇게 조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해당 학생과 학부모들은 『보행이 좀 자연스럽지 못할 뿐 학업을 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정황 판단은 여기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인도적인 견지에서나 우리나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 조항에 비추어 보아도 신체가 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진학을 막아 버린다는 것은 온당한 처사로 보기 어렵다.
만약 이 학생들이 함께 수학하는 학생들의 학업에 방해가 되거나 특수 시설이 필요할 정도라면 몰라도 단순한 「외모상의 불완전」이나 해당 직업인의 「이미지 손상」 따위를 숨겨진 이유로 한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독선이요, 인권유린이다.
불구를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집념과 피땀어린 노력으로 정상인에 못지 않은 학력과 향학 의지를 갖추었다면 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더욱 고취하는 것이 도리요, 교육 이념에도 합당한 처사일 것이다.
고금 동서의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정치와 과학·의학·예술을 빛낸 위대한 인물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같은 정치인, 프랑스의 「로트랙」 같은 화가, 「펄먼」 같은 음악가들도 신체 장애자이고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 「발하」는 장님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이 세계적이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는 장님 안과 의사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는 법무장관을 지냈던 이인씨도 신체장애자였다.
장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말썽이 된 사건이 이번 뿐만은 아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연수원까지 수료하고서도 법관 임용에서 탈락된 장애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한 교사 후보자를 장애자란 이유로 면접에서 낙방시킴으로써 교단에의 꿈을 산산이 부숴 놓은 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고 당당히 대학에 입학한 장애자의 경우도 없지 않다.
장애자란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학업이나 취업에 차별 대우를 한다는 것은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국가 정책 목표에도 어긋남은 물론 법률적으로도 평등과 기회균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물론 장애의 정도를 무시하고 모든 장애자들을 정상인과 동일하게 대우할 만큼 우리의 현실이 시설이나 재정면에서 충분한 여건을 갖추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며 앞으로의 과제다. 따라서 그 이전까지는 입학과 취업의 객관적인 기준만이라도 분명히 정하여 장애자들이 예기치 못한 실망과 좌절이나마 막아 주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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