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가 동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제 원유가가 드디어 배럴당 20달러 선을 깨고 큰 폭으로 떨어져 원유 시장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 예상되는 파란이 국제 자본 시장과 금융·무역 시장 및 세계 경기에 어떤 파급을 미치게 될지는 아직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석유 시장의 혼란은 거의 예외 없이 개도국, 특히 비산유 개도국들에 가장 큰 부담을 지우는 쪽으로 귀결되었다는 경험이다.
기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비산유 개도국들은 원유가 하락이 당장에 국제수지 부담이나 인플레 억제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겠지만 그것이 단순한 수급과 시장가격의 변동을 넘어선 파동의 국면에 이르면 완충의 능력이 적은 개도국들이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20달러의 벽이 무너진 원유 시장을 보면서 낙관과 우러를 동시에 느끼는 것은 결코 개도국들의 피해 의식 탓만은 아닐 것이다.
2차 석유파동 이후 20달러의 벽을 최초로 깬 북해산 원유는 비록 거래 물량이 보잘것없지만 현물시장의 시황을 언제나 주도해 온 점과 비OPEC원유의 바로미터인 점에서 항상 주목되어 왔다. 이번 유가 하락은 지난 연말 OPEC가 실질적으로 공시가제를 포기하고 시장 확보 전략으로 전환할 것을 결정할 때부터 이미 예견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하락은 아직도 기름 성수기가 지나지 않은데다 오는 2월의 OPEC특별회의를 앞두고 있어 때 이른 느낌이다. 이는 곧 이번 하락이 파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 성급한 관측자들은 이미 배럴당 15달러 선을 예견하고 있으나 문제는 이 같은 유가 인하 전쟁이 적정 선에서 수습되지 않을 경우 가장 먼저 국제 금융의 파동이 우려되는 점이다.
이번 유가 하락의 직접 배경이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만 해도 이제는 공시가에 집착하지 않고 시장 확보와 재정 수입 증대를 위해 산유량을 계속 늘릴 전망이어서 세계 시장의 공급 과잉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4월 이후 기름 성수기가 지나면 공급 과잉은 더욱 늘어난다. 사우디아라비아 외에도 기름 생산을 늘려야 할 OPEC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OPEC의 생산 쿼터와 공시가는 함께 사라지고 비OPEC산유국들과의 경쟁적 증산과 가격 하락이 확산될 뿐이다. 이런 사태는 당사국들의 국제수지뿐 아니라 국제 금융 시장에도 크나큰 혼란을 야기 시킬 것이다. 개도국들의 외채 부담이 더욱 가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OPEC와 기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비OPEC생산국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해산 원유에 의존해 온 영국도 유가 하락은 경제 운영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결국은 이 같은 전쟁이 OPEC와 비OPEC산유국들 모두에 도움되지 않음을 깨닫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가 문제다.
이미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협상의 가능성을 찾고 있지만 여타 비OPEC권과의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이 세계 경제 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 동안의 원유가 하락을 국내 유가에 신속히 반영하면서 장기적인 수급 변화, 특히 제3의 파동 가능성에 면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국제 유가 하락과 함께 정부에 당부하는 것은 우리의 유류 소비를 더 줄이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동자부는 모든 산업체들이 에너지 저소비형 시설을 갖추는 일을 더욱 철저히 독려하고 감독해 유가 하락의 효과를 배증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