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투자와 명목 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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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경제팀은 새해 업무 계획 보고를 통해 올해 실질 경제 성장률을 7%수준으로 회복시키되 물가는 2∼3%로 안정시키고 국제수지는 균형화를 이룩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총량 계획은 한마디로 매우 바람직한 청사진이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는데는 적지 않은 장애가 예견될 뿐 아니라 개별 정책간에 미리 조정되고 국제 여건의 변화와 조화되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경제 부처간의 긴밀한 정책 협조와 팀웍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점에 서 있다.
성장과 인플레의 적절한 조화는 물론 국제수지의 균형화까지도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기본 과제들임에 비추어 총량 정책의 틀을 균형 있게 짜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현재의 경제 국면이 매우 광범한 분야에서 침체되어 있고 그 원인이 단순한 해외 경기 둔화나 일시적 국내 수요 부족에 따른 순환적 불경기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시적 순환 국면이라면 지금쯤은 이미 지난해 연초부터 대량 살포된 통화 공급이나 활발한 재정 사업의 경기 자극 효과가 나타날 시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불투명하여 투자는 계속 침체되고 금융기관은 은행·단자·보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금이 남아 돌아가고 있다. 아무도 돈을 꾸어 가지 않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일시적 경기 국면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7%의 실질 성장이나 4%선 이하의 실업률 안정은 여러 형태의 정책 수단으로 달성 가능하지만 그것을 비인플레적으로, 그것도 국제수지 부담을 덜어 가며 달성하는 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그 많지 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일한 길이 생산적 투자의 진작이다. 새 경제팀이 해결해야 할 1차적 과제가 실업 해소와 고용 증대라면 그 길은 민간의 생산적 투자를 고무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 민간 투자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규명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노력이 미진하다.
적어도 돈이 모자라서 그러지는 않음이 지난해의 경험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국내 총통화는 15%가까이 늘어났고 총 유동성은 21%, 특히 민간 여신 증가액은 그 전해에 비해 50%이상 많았다. 그래도 투자가 부진했다면 그것은 자금량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의 총체적 투자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기대 수익률이 낮거나, 아니면 투자비용이 너무 높거나 셋 중 하나다.
실업 해소를 위한 고용 확대와 성장 정책은 이 같은 투자 저해 요인의 제거를 선결 과제로 안고 있다. 민간의 투자 분위기를 저해하는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환경의 제거도 중요하고 기대 수익률과 비교한 투자비용의 절감도 긴요하다.
특히 수출산업의 경우 주요 경쟁 상대국들, 예컨대 일본의 프라임 레이트가 5.5∼7.2%, 대만이 6.25∼9.5%, 미국조차도 9.5%인데 비하면 국내 명목 금리는 아직도 높다.
최근엔 G5국 재상회의도 금리 인하의 여건 조성을 주요 의제로 다루었다. 우리가 새삼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저축률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 금리는 도리어 제일 싸다는 사실이다. 역대 재무장관들은 금리와 저축을 연계시키는 주장을 했지만 일본이나 적어도 대만 같은 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금리로는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기는 어렵다. 물론 투자가 명목 금리에만 지배받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투자비용의 부담을 안고서는 경쟁력을 쇄신하기 어렵다는 것이 민간 경제계의 중론이다.
민간 투자를 둘러싼 여건과 조건들을 포괄적으로 개선하는 길을 하루속히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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