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제싸고 고민하는 제3세계 장기 집권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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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2명의 장기집권자가 물러났다. 16년간 정권을 쥐어온 수단의 「누메이리」 (56)전대통령과 21년간 집권해온 탄자니아의 「니에레레」 (64)전대통령이다.
이 두 사람의 퇴진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누메이리」가 외유 중 쿠데타로 정권을 잃은 데 반해 「니에레레」 는 스스로 물러나 농장을 경영하며 만족스런 여생을 보내고있다.
두 사람의 성격도 정반대다. 「누메이리」 의 성격은 과격하다. 리비아의「카다피」 대통령을 증오하는 그는 81년 프랑스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바다에 빠지건 비행기에서 떨어지건 상관없다』고 격분했다.
본 마음이야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국가원수는 드문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권16년간 쿠데타기도만 6번, 끝내 넘어지고 말았다.
「누메이리」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정책의 실패였다. 그러나 탄자니아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었지만「니에레레」 는 명예로운 평화적 퇴진을 할 수 있었다.
중공식의 사회주의 체체를 동경하고 비동맹주의를 표방한 「니에레레」 는 항상 온화하고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독립운동 지도자였을 때 의견이 대립하면 『잠깐 쉬자』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며칠이고 반복, 끝내 상대방은 그 끈기에 졌다고 한다. 「니에레레」 는 「기다림의 정치가」 다. 중대한 행동을 할 때는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통찰력, 이런 능력은 장기 집권자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능력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65) 대통령은 21년 전실권을 장악하고도 대통령취임까지 2년반이나 기다리며「수카르노」 전대통령을 그대로 두었다. 조금도 실패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차근차근 만들어가 주위 사람들의 애를 태우게 한끝에 대통령자리에 앉았다.
「수하르토」의 정책결정은 아직도 기다림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니에레레」 와 다른 점은 자리를 물려줄 믿을 만한 2인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하르토」 는 2인자가 될만한 인재를 잘라가며 안정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마르코스」정권은 지난해부터 크게 흔들리고있다. 여기에도 한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 같다.
27년간 정권을 유지해온 싱가포르의 이광요 (63) 수상은 지난해 장남 이현룡(34)을 통산·국방담당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가까운 장래 부친을 이어 수상에 취임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 철저한 서구적 합리주의자인 이수상이 네포티즘(연고자등용)에 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자못 궁금하다.
북한의 김일성(74)도 그의 아들 김정일 (44)에게 권력을 넘겨줄 포석을 하고있다.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알려진 루마니아의 족벌정치가「차우셰스쿠」(68)대통령도 아들 「니크」 (공산주의자 청년동맹서기)를 후계자로 지목, 부인 「엘레나」를 제1부수상으로 등용하는 등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자유중국에서는 장경국(76)총통이후 뚜렷한 실력자 없이 본토인인 이등휘 부총통이 총통을 승계한 뒤 집단지도체제로 흐를 것 같다.
2차대전후 민족주의 물결과 함께 제3세계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많이 생겼다.
이제 이들은 후계문제에 고민하고있다. 권력자는 누구나 역사적 역할을 끝냈을 때 「니에레레」 같은 깨끗한 퇴진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마지막 결단이 가장 어러우며 아름다운 끝맺음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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