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사대부문화의 단아한 기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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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둥그스름하니 길쭉하게 생긴 연적을 예부터 무릎연적이라 부르고 있다. 곧추세운 여인의 무릎이 감춰진 치마폭에서 살포시 드러나는 모습같다는데서 나온 이름-. 참으로 감각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한손에 꽉 들어찰 듯한 알맞은 크기의 형체와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유백색 때깔은 한번 손에 쥐고 쓰다듬어 보고픈 강한 충동을 일으켜 준다.
실제로 이것이 연적이고 보면, 이 벼루 물그릇을 사용했던 선비는 조석으로 이를 만지면서 백옥같은 여인의 무릎을 연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는 아마도 한량기조차 있는 멋장이 선비였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주구를 뿌리로 하여 매화의 억센 등걸이 새순과 함께 간결하게 그려진 공예의장은 사대부 문화의 단아한 기품을 여실히 풍겨준다.
용과 미가 이처럼 탁월하게 조화된 이 무릎연적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시대의 유명한 풍속화가인 혜원 신윤복 그림의 여속과 양반의 풍류가 떠오르며, 영·정조 시대의 난숙한 문화상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보게 된다.
유약은 매우 얇게 시유됐으나 빙렬이 없고, 굽다리가 낮게 받쳐진 명품이다.
겨울철의 관람객들 편의위해 중앙일보사내 호암 갤러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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