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피해 보상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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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 소비자가 「왕」까지는 몰라도 주인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정부는 일상 생활과 관련이 깊은 식료품·공산품·의료 및 화학제품·운수업 등 4개 업종 1백여개 품목에 대한 소비자 피해 보상기준을 마련하고 오는 2월 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돈을 주고 한번 상품을 구입하고 나면 사후에 상품에서 이상이 발견되거나 불량품임이 밝혀졌을 경우 전적으로 판매자의 선처에 의해 물건을 바꿔오거나 돈을 되돌려 받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한 교환이나 반환 행위의 결정권이 업자의 선처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인 소비자의 입장이 약화되고 당연한 권익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우기 상품의 하자와 불량의 책임을 둘러싸고 이견이 상충했을 경우 소비자는 꼼짝 못하고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처지에 있어 온 것이다.
물론 소비자 연맹이나 YWCA같은 민간 공공단체에서 소비자 고발을 접수하고 있고 형식적이나마 각 행정기관이나 경찰관서에 소비자 고발 창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이 서민들의 일상 생활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제 기능을 활발히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한 역시 고발이나 하소연에 그칠 뿐 실제적인 보상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이제 정부가 피해를 본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구입대금을 전액 환불받거나 피해를 보상받도록 그 기준을 정한 것은 소비자의 권익옹호를 위한 중요한 기틀이 된다. 이는 또한 업자의 입장에서도 판상의 의무와 동시에 보상의 한계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평가해야 할 일이다.
다만 이번에 마련된 보상 기준이 법적인 뒷받침이 있는 강제 규정이 아니므로 피해자와 업자 사이에 보상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맞섰을 경우 결국 법에 호소해야할 사태까지 이를 수도 있으므로 정부는 하루 속히 법적인 규제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업자 측에서 피해보상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성의를 보이느냐에 달려있다. 예컨대 각 업체마다 소비자의 피해보상이나 불만을 수용하는 전달 창구의 설치가 시급하다. 우리의 소비자 보호법 시행령은 기업체 안에 소비자 피해 보상기구를 설치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업체들이 형식만을 갖추고 있을 뿐 자기 회사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나 요구를 수용할 태세가 안돼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심지어는 소비자 피해보상 기구가 회사 안에 설치돼 있어야 한다는 규정자체를 모르는 업체도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뢰나 이미지를 관리하는데 좋다는 인식을 기업들이 솔선해서 가져야 한다.
기업은 정부가 정해 놓은 소비자 피해 보상기준을 철저히 이행할 수 있는 자세와 전담 기구를 완비하여 적정하고도 신속한 처리를 함으로써 소비자와 기업이 다 함께 건전한 상거래 질서 확립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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