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과 순리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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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간의 대화가 막힌 상태에서 새해를 맞는다.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듣는 연두 국회의 공동소집을 위한 비공식 대화가 모색되고 있으나 그 전망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도 언제 어디서 천둥 번개가 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고 할 지경이다.
의회 정치가 타협의 기술이며 정의와 진리는 토론을 통해서만 그 실현이 가능하다고들 입이 아프도록 외쳐 댔지만 현실 정치는 그런 원리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거의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으며 야당은 야당대로 개헌의 당위론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실 정치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에 실패했다.
이런 형편에서 꼬이기 만한 정국을 푸는 실마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가 무엇보다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지만, 연두 국회소집과 일부 신민당 의원들의 탈당 소동에 당장 눈길이 끌린다.
수 삼차 지적한대로 대통령이 국회에 나와 새해 국정의 지표와 포부를 밝히는 것은 좋은 관례다. 제5공화국에 들어와 되살아난 이 관례는 국회를 정치의 본 마당으로 삼아야한다는 민주정치의 원칙에 비추어서도 소중하게 여길만하다.
그렇다고 야당에 대고 무조건 국회에 출석,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다.
다만 국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신민당의 기본 입장인 이상 국회 존중의 모양을 갖추어 주는 일에 주저할 이유는 없다.
야당 의원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1월 국회에 출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으로서도 나름대로의 분위기 조성에는 힘써야 할 줄 안다. 경색정국을 타개하는 돌파구는 결국 막힌 대화의 통로를 트는 길밖에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연두 국회의 소집문제에서 어떤 계기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물론 병인년의 정국이 지난해보다 나아지리라고 희망적으로 볼 근거는 찾기 어렵다. 88년으로 가는 중요한 고비 길이 될 금년의 정국은 타협이나 대화보다는 가파른 대결이 한층 심화되리라는 비관적인 관측들이 더 무성한 것은 사실이다.
신민당 일부 의원들의 탈당 소동만 해도 적어도 정국의 원활한 전개에 플러스 요인으로 비쳐지지는 않는다.
탈당의원들은 대부분이 지난 선거에서 민한당으로 출마, 당선된 의원들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민당으로 말을 바꾸어 탄 이들이 1년만에 다시 탈당이란 행로 변경을 한 까닭이 무엇인지 세세하게 따질 흥미는 없다.
야당의 주장대로 이번 소동이 「외부의 작용」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경색될 대로 경색된 정국이 이번 일로 더욱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만 신민당으로서도 정당을 너무 외곬으로만 몰고 가 당론의 통일을 찾지 못하고 이탈의 명분을 제공해 준 점에 대해서는 뼈저린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당 운영방식이나 당론 조정에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체질을 바꾸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야가 모든 문제를 순리로 풀어 나간다는 성숙한 사고와 자세로 임하는 것만이 난국 극복의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강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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